저는 서울 도로에서 택시만 가지고 약 170만km를 주행했습니다. 한 마디로 도로 위의 ‘프로’가 됐습니다. 이 정도 되면 ‘아마추어’들의 실수가 눈에 보이고 그 원인이 이해가 됩니다.

어떠한 일이든 감각이란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 직업운전자들과 가끔 자가용을 운행하는 운전자의 운전 감각은 많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프로든 아마추어든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 현장감각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난 2일 밤 10시쯤, 금요일이라 그런지 늦은 시간까지 차량통행이 많았습니다. 마포에서 오류동에 가는 분을 손님으로 모시게 됐는데, 택시를 타려고 하는 동작부터 달라 보였습니다. 손님이 택시를 잡길래 차량 속도를 줄이면서 오른쪽으로 붙이는데, 무엇이 그리 급한지 택시가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탑니다. 가만히 서 있으면 택시 문 열기 좋을 정도로 알아서 그 앞에 멈춰 설텐데 말이죠. “어서오세요” 하고 인사할 새도 없이 “오류동에 가자”고 합니다.

“기사님, 빨리 가주세요”라는 말은 비록 하지 않았지만, 저는 손님이 보인 그 잠깐의 동작에서 ‘굉장히 급한 일로 이동한다’는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약간 서두르는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서두르면서도 안전하게 승차감 유지하면서 다른 차량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운행을 했습니다. 손님이 답답했나봅니다. 기어이 추가 멘트를 날리더군요. “기사님, 제가 좀 늦어서 그러는데요. 최대한 빨리 좀 부탁드립니다.”

금요일 밤 10시의 마포-오류동 방향 통행량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빨리 가자는 손님의 요구를 실현하려면, 어떻게든 교통문화에 해가 되는 운행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무조건 손님 요구에 따르다간 택시운전을 오래 할 수 없기 때문에, 서두르면서도 최대한 교통문화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운행했습니다. 프로로서 최고의 서비스는 바로 ‘안전운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안전하게 빨리가는' 운행을 어떤 손님들은 답답하게 생각합니다. 운전자에게 직접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대신 간접적으로 '빨리 가달라'는 의사를 표시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 차 앞쪽으로 누가 차선변경을 하면 "저저저 저놈 봐라, 저런 X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발전을 못 한다"고 화를 냅니다. 빨간 신호등에 걸려 멈춰서면 "우리나라에 웬 신호등이 이리 많으냐"고 하고, 횡단보도 앞에 서면 천천히 건너는 사람들에게 별별 욕을 다 합니다. 이런 손님 앞에서 누군가 우리 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실수라도 하게 되면 별의별 욕이 다 쏟아집니다. 이중 절반은 빨리 가주지 못하는 저에게 하는 소리같기도 하구요.

이런 식의 반응은 사실 우리 운전자들에게 적지않은 부담과 압력이 됩니다. 이때문에 6만원짜리 과속단속 스티커를 받는 결과가 나타날 때도 있구요. 도로에서의 스트레스는 '본인의 욕심 + 다른 운전자의 실수 + 서로간의 이해부족'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첫번째로 '본인의 욕심'은 '일단 도로에 차를 끌고 나온 이상 내가 아무리 용 써봐야 도착시간은 출발시간에 비례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줄일 수 있습니다. 두번째, '다른 운전자의 실수'는 나도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세번째 '서로간의 이해부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프로는 아마추어가 답답해 보이고, 아마추어는 프로가 난폭운전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차이를 줄일 수 있으면 서로 간에 이해도 역시 높아질 것입니다.

운전을 오래하다보니 누구보다 아마추어들의 실수가 더 잘 보이고, 그 원인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때문에 도로에서 주변 차량의 실수에 대해 상대방이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방어운전을 합니다. 다른 차량의 지나친 실수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평상심을 유지하며 일을 합니다.

가끔 아마추어 운전자들로부터 저의 본의 아닌 실수에 대한 보복운전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도 그냥 그 정도로 지나갑니다. 다른 사람이 저에게 보복운전을 했다고해서 똑같이 보복하거나 길에서 싸움을 낸다면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 도로에서 아쉬운 장면을 봅니다. 프로운전자가 아마추어와 차량을 세워놓고 다툼을 하고 있거나 프로끼리 도로에서 다투는 것을 볼 때입니다. '골프황제 타이거우즈'나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도 한 일주일 골프채나 활을 잡지 않으면 감각이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프로운전자들도 일주일 정도 쉬었다가 자동차를 몰아보면 한 30여분 지나서야 제 감각이 돌아옵니다. 우리도 그럴진대 어쩌다 한 번 운행하는 자가용 운전자들은 어떻겠습니까.

프로들은 아마추어들이 좀 답답해 보이더라도 이해의 폭을 넓혀야 도로에서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아마추어들의 운전행동 중 하나는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할 때 입니다. 내가 우회전 하려는 방향의 건너편 도로에 좌회전 신호가 나있는 경우, 그 좌회전 줄의 유턴차량만 조심하면서 우회전하면 차량을 멈추지않고 서행하면서 진입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일부 아마추어분들은 이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잡아 멈추고 또 멈추고 합니다. 이 뒤를 따르는 프로들은 솔직히 답답합니다. 그렇다고 '멈추지말고 빨리 우회전하라'며 뒤에서 빵빵 거리는 것은 이제 막 아마추어를 벗어난 '프로추어(프로이면서 아마추어의 생각을 가진 운전자)'입니다.

이런 프로추어분들은 야구에서 1루에 주자를 둔 우완투수의 시선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우완투수는 1루에 주자가 있을 경우 투구하기 직전까지 주자를 아주 여러 번 봐야만 합니다. 프로 운전자들은 이 동작이 아주 유연합니다. 차량을 멈추지 않고도 '현재 사거리 신호가 어느 방향인지' '우회전하면서 속도를 어느 정도 줄이거나 높여도 될지' '이 속도로 우회전해도 직진차량에 방해 또는 사고 위험이 없는지'에 대한 판단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운전이 아직 미숙하거나, 운전이 능숙하기는 하지만 어쩌다 한 번 운전하는 사람은 이 행동이 쉽지 않습니다. 2루로 도루를 허용하는 투수도 있지 않습니까.

도로 현장에서의 감각 차이를 서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다른 차량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서울 도로에서 170만km를 운행한 제가 가장 많이하는 실수하는 때는 다음 두 가지 경우입니다. 첫째, 길을 건널 것처럼 횡단보도 앞에 서있던 사람이 갑자기 택시를 잡을 때입니다. 횡단보도가 아닌 상황에서는 손님일수도 있기 때문에 서행하면서 주위를 살피지만 이런 때는 저도 당황하게 됩니다. 두번째는 승객이 갑자기 '여기서 세워주세요'라고 할 때입니다.

손님 한 사람이 귀한 상황에서 손님을 두고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않고, 갑작스런 손님의 요청이라도 들어 드릴 수밖에 없으니 뒷차의 양해를 바랍니다.

추신 : 앞전 글 '잉여인간이 된 택시기사의 고민'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저는 개인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 이를 벗어나는 부가가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집단의 1%가 아닌 99%를 차지하는 분들의 고초는 10~20년을 내다 볼 수 있는 제도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지 않나'하는 생각에서 올린 글이니 민감하게 보지 않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선주는 누구?

이선주(47)씨는 23년 경력의 택시기사다. 2008년 5월부터 차 안에 소형 카메라와 무선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동영상 사이트인 '아프리카(afreeca.com/eqtaxi)'에 '감성택시'란 이름으로 실시간 생방송하고 있다. 택시 뒷좌석에는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카피씨(Car-PC)를 설치해 무료로 승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미 ABC 방송, YTN, SBS 등에 소개된 바 있다. 1999년에는 교통체계에 대한 정책제안 등의 공로로 정부가 선정한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조선닷컴에서 'eqtaxi'라는 아이디로 활동하고 있다. '만만한게 택시운전이라고요?(1998)'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배꼽잡고(1999)' 등 두 권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