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봤다. 제목은 대충 이랬다. '여자들이 남자에게 열광하는 순간.' 그 영광의 1위를 차지한 항목을 확인하곤 웃음이 터졌다. '주차장에서 주차 티켓을 입에 물고 한 손으로 후진할 때.'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주변 여성들에게 차례차례 물어보았다. "여자들은 정말 이런 모습을 보고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느냐"고. 대답은 완벽한 '네'.
뭐, 이런 황당한 진리가 있단 말인가. 남녀의 연애를 수학공식 대하듯 경건하게 풀어갔던, 자칭 연애카운슬러는 제대로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2위, 3위를 차지한 항목까지 충격은 이어졌다. '미간을 찌푸린 채 한 손으로 넥타이를 풀 때' '두 손으로 티셔츠의 밑단을 잡고 한 번에 상의를 벗을 때'.
프란세트 팍토는 '인간은 자신의 결핍을 해결해줄 이성을 찾는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해주는 사람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건 연애입문서 1장에 나와 있는 '기본'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이 지면을 통해 너무 형이상학적인 해석만을 내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고 있다.
영화 '나인 하프 위크'의 각본을 썼던 잘만 킹은 자신이 직접 감독한 영화 '레드 슈 다이어리'에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선보였다. 이미 다정다감한 연인을 두고 있는 여자가 또 다른 낯선 남자에게 끌리는 장면이다. 안과에 다녀오던 여자는 도로 공사 중인 젊은 인부가 구릿빛 팔뚝을 드러내고 굴착기로 땅 파는 모습을 엿보다 대책 없는 열정에 빠져든다. 너무 뻔한 얘기라고?
미국의 전설적인 여성 포르노 스타 제나 제임슨은 자신의 프로덕션을 세우면서 이런 인터뷰를 했다. "여성의 시각을 지닌 포르노를 만들겠다."
그래서 봤다. 과연 여성주의 포르노란 어떤 모양새인가 궁금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존의 포르노와 별다를 것 없는 작품들이었다. 단지 내러티브가 조금 더 강조되었을 뿐, 헬스장에서 막 걸어 나온 이탈리아산 종마들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여성주의 시각의 포르노라고 해도 핵심은 남성의 건장한 육체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진리는 언제나 간단하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알고 나면 야유를 날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 담배 한 개비 입에 물기보다 더 쉬운 행동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해 왔는가?
말이 나온 김에 어디선가 들었었지만, 잊어버리고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자. '여자들은 남자들의 팔뚝에 솟은 핏줄에 성적 매력을 느낀다' '벽에 콘크리트 못 하나를 거뜬히 박는 남편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수컷의 냄새를 맡았다'. 결국 그녀들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건 꽃미남 전성시대를 맞은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린 또는 포기해버린 '수컷'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이건 패션 트렌드의 변화만큼이나 변덕스럽게 움직이는 여성들의 취향에도 결코 영향받지 않을 마법의 열쇠 같은 것이다. 그녀들이 호르몬 이상을 일으켜 추성훈 같은 이두박근을 지니게 되지 않는 한, 벽에 못을 박고,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는 것은 우리 남자들의 보장된 역할이니 말이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고르디아 지방에서 수백 개의 매듭으로 이뤄진 줄을 발견한다. 그 밑엔 이런 설명이 있었다. '이 줄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정복할 것이다.' 영민한 알렉산더는 단칼에 그 줄을 끊어버렸고, 아시아까지 정복지를 넓혔다. 이 수천 년 전 일화는 현대의 남녀관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해심이 많은 남자는 그 남자와의 미래를 계획하게 되는 단서이지 단숨에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매력은 아니다. 고르디아의 매듭을 푸는 방법은, 망설이는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억센 팔뚝과 망치를 집어 드는 자신감, 그리고 건강한 혈관에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자 고민이 생긴다. 어설픈 연애카운슬러보다 체육관의 벤치 프레스가 더 효과적인 연애술사임을 확인한 이 마당에 이 칼럼을 계속해야 할지 말이다. 백 마디 말보단 결국 탄탄한 팔뚝이 진리인 것을.
성차이 허무는 사회… 남자를 남자답게 내버려두라
쉽지만은 않은 연애, 연애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연애의 핵심 심리, 3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