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 오프닝 무대에 선 김정우와 이영호의 표정은 대조적이었다.
이영호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활활 타올랐다면 김정우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눅이 든 것처럼 보였다.
이영호에게 0-2로 몰린 상황에서 김정우가 2-2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을 때 두 사람의 표정은 완벽히 '페이스 오프' 됐다. 김정우의 얼굴은 이미 마지막 5경기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김정우는 "욕심 부리지 않고 부담없이 게임을 하자고 생각한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16강에서 벼랑 끝에 서 본 경험도 역전의 힘이 됐다. "0-2로 지고 있다고 해서 경기가 다 끝난 건 아니지 않나. '재재재재경기'도 해봤고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주변에서 말씀해줬다. '어차피 0대3으로 져도 해볼 건 다 해보라'는 변형태 형의 조언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김정우는 약간 우위에 있던 결승전 1경기에서 재경기를 하게 된 것에 대해서도 당시의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재경기를 준비하면서 지연 시간이 길지 않았나. 그 시간 동안 다잡고 있던 마인드가 조금 약해진 것 같다. 제대로 플레이도 안 됐던 것 같고. 이런 큰 무대에서 재경기는 처음이라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0-2로 몰린 김정우는 오히려 공격적인 스타일의 전술을 썼다. 장기전보다는 속전속결로 이영호의 허를 찔렀다.
"1,2경기를 소극적으로 한 것 때문에 남은 경기에선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다전제를 많이 안 해봐서 감이 없었는데 4경기부터 그런 게 느껴지더라. 3경기를 공격적으로 해서 손쉽게 이기고 나니까, 왠지 약이 오른 이영호가 4경기에선 반대로 공격적인 전술을 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 역시 준비했던 전술 대신 즉흥적인 플레이를 했고 그 감이 주효했던 것 같다."
김정우는 결승전 오프닝에서 자신은 크레인을 타고 내려온데 비해, 이영호는 격납고의 거대한 문이 열리면서 그 뒤에 있던 비행기에서 내리는 눈부신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에 대해 '질투'는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크레인에 올라가 있으니까 약간씩 흔들려서 어지럽고 경기에 영향 미칠까봐 걱정했다. 이영호가 멋진 오프닝을 장식했는데, 저번 시즌 우승자이고, 지금도 가장 잘하는 선수이니까 그정도의 배려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엔 나도 받지 않을까.(웃음)"
김정우는 우승상금 4000만원의 용도는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성인이긴 하지만 부모님께서 경제적인 부분을 관리해주신다. 이번 상금도 부모님께 드릴 생각이다."
< 권영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