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200만 관객을 돌파한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일본에서 무려 250억원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당시 '내 머리속의 지우개'는 국내 일본 진출작 중 단연 역대 스코어 1위를 기록해 현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연출자 이재한 감독이 이번엔 '사요나라 이츠카'로 U-턴했다. 일본에서 선 개봉된 영화는 약 135억원의 수익을 올리며 15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섬세한 카메라 터치와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쉽고도 어려운 주제를 애잔하게 그려낸 이재한 감독을 만나봤다.
▶ 현지화 프로젝트인 '사요나라 이츠카'가 본인에게 의미로 다가왔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찍으면서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준비 기간 1년, 촬영 기간 1년, 그리고 후반작업까지 총 2년 6개월이나 소요된 영화다. 촬영 도중 리먼 브라더스 사건까지 터져 제작비가 2배가 오르는 등 영화 내, 외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작품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만큼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럽다. 애증이 서린 작품이랄까?
▶현지화를 추구하며 일본 배우들까지 직접 캐스팅했다. 큰 모험이었을텐데 작업은 어땠나?
-거창하게 글로벌 프로젝트라 시도했다고 말하기보단 소설의 배경과 스토리에 충실하고 싶어 일본 배우와 함께 태국에서 촬영했다. 그래도 대부분의 세트 촬영은 거의 한국에서 이뤄졌다. 한-일-태국 세트장을 모두 비교해 봐도 우리 세트장이 효율이 가장 좋았고, 일본과 태국 배우들을 썼지만 우리 나라 영화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일본 배우들과 우리 나라 배우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를 촬영하면서 양국 배우들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더 많이 발견했다. 하지만 영화 촬영 동안 대사로 NG를 낸 배우들이 한명도 없었다는 점은 인상 깊었다. 일본 배우들은 주, 조연 할 것 없이 작품을 철저하게 준비해오는 느낌이었다.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해 오히려 국내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없을 것 같은데
―일단 감독으로서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 만족한다. 상업 영화의 감독이 흥행과 완전히 무관하긴 힘들겠지만, 흥행의 여부를 떠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느꼈하는 바람은 있다.
▶태국에서의 로케, 일본 배우들과의 작업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우기에 촬영돼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촬영장 안에서는 굉장히 즐거웠다. 다국적으로 구성된 스태프 때문에 영어, 한국어, 일어, 태국어를 모두 사용했다. 그들의 언어를 사용해 스태프의 이름을 직접 부르고 대화하니 촬영장 분위기가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태국에서의 촬영은 어땠나?
―사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서 촬영한다는 것에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촬영을 해보니 능숙한 태국 스태프에게 놀랐고, 또한 활주로 신, 공항 신 등 국내에서는 불가능할법한 장면도 얻어낼 수 있었다. 대단히 좋은 경험이었다.
▶감독으로서 추구하는 바가 있다면?
―먼 곳에 앉아 메가폰만 잡고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감독이고 싶진 않다. 연기하는 배우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과 소통하고 싶다. 배우들과 친밀감을 쌓아 서로 활발하게 소통이 이뤄지면 그런 것들이 모여 결국 작품성에 반영된다고 믿는다.
▶'첩혈쌍웅'으로 할리우드 진출을 앞두고 있는데
―모든 감독들의 꿈이지 않는가? 꿈을 이룬다는 생각에 너무 기쁘다. 하지만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탓에 부담감도 있다. 열심히, 아니 잘 하겠다. 다른 국내 감독에게도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
▶할리우드에 국내 배우를 데려갈 생각은 없나?
―물론 있다. 데려간다면 한류스타를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나리오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 결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
▶감독으로서 국내 관객들에게 '사요나라 이츠카'에 대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영화 속에서 토우코는 유타카를 처음 만난 느낌을 "백화점을 지루하게 걷다가 맘에 드는 루이뷔통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지루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맘에 드는 루이뷔통을 발견했던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보고 싶다.
최근 그는 영화 '포화속으로' 촬영 현장인 경상남도 합천과 일본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쉴 틈이 없는 빡빡한 스케줄 탓인지 이재한 감독의 얼굴에는 피로가 엿보였다. 하지만 1시간 가량의 인터뷰 시간동안 미소를 잃지 않으며 감독으로서의 철학과 고뇌를 털어놨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하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풍기는 그의 모습에 왜 할리우드가 반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이재한 감독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