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까지 여성들 허벅지 노출은 금기 |
1960년대 메리 퀀트 미니스커트 첫 출발 |
운동선수에게 허벅지 근육은 힘의 근원이다. 일반 여성들에게 허벅지는 건강미와 성적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부위다. '롱다리'의 매력 포인트 역시 허벅지다.
허벅지는 섹시미, 에로티시즘과 직결된다. 청바지 CF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효리, 신민아, 한예슬, 손담비, 한지혜 등이 모델로 출연한 청바지 CF는 모델의 외모를 강조하지 않는다. 늘씬한 뒤태, 즉 허리에서 허벅지로 이어지는 라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청바지 CF모델은 각선미 좋은 연예인의 상징이 됐다. 강수연, 진희경, 김여진 주연의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포스터가 세 여배우의 허벅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도 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섹시한 허벅지의 선구자는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다. 육감적인 몸매가 일품이었던 먼로는 영화 '7년만의 외출'(1955)에서 극적으로 허벅지를 노출했다. 지하철 송풍구에서 나온 바람에 치마가 말려 올라가는 장면으로 뭇남성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허벅지를 노출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0세기 이전까지 여성들의 노출은 금기였다. 동양은 물론 유럽에서도 여성들이 허벅지, 무릎을 드러내는 일은 불가능했다. 깊게 패인 드레스로 가슴을 노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자 집시들만이 다리를 노출했고, 이를 무기로 남자들을 유혹해 몸을 팔았다. 남성들의 노출은 큰 제약이 없었다.
사람들은 예술에서 탈출구를 마련했다. 그림 속에서는 노출이 가능했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를 지나고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화가들은 여신의 나체를 그렸다. 보티첼리는 1485년경 누드화의 시초로 꼽히는 '비너스의 탄생'을 완성했다. 인간을 모델로 한 최초의 누드화는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다. 고야는 가톨릭이 지배하던 1800년경 스페인에서 애인으로 추정되는 여인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누드를 그려 충격을 안겨줬다. 이후 르느와르의 '목욕하는 여인들'과 같이 여성들의 누드화가 일반화됐다.
이 그림들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브, 아프로디테 같은 여신은 물론 여성 모델들의 허벅지가 두껍고 심지어 울퉁불퉁하다는 것이다. 요즘 미의 기준으로는 못 생긴 축에 속한다.
현실 속에서는 1860년대가 돼서야 여성들의 종아리 노출이 가능해졌다. 1920년대에는 원피스의 길이가 처음으로 무릎까지 짧아졌다. 이때 스타킹이 유용하게 사용됐다. 다리를 감추면서도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이 시대가 주요 배경인 할리우드 느와르 영화에는 스타킹을 신은 여성의 다리를 클로즈업한 장면이 빈번하게 나온다. 물론 거부감도 많았다. 이탈리아의 한 주교는 "무릎길이의 스커트가 지진을 일으킨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획기적인 변화는 1960년대 찾아왔다. 영국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스커트를 싹둑 잘랐다. 치맛단이 무릎에서 한 뼘쯤 올라간 스커트를 선보였다. 미니스커트의 시작이었고, 그 핵심은 허벅지 노출이었다. 여성들은 노출을 반겼지만, 부담스럽기도 했다. 치마 속 팬티가 노출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1970년대 초 핫팬츠가 등장했다. 미니스커트와 핫팬츠는 이제 여성의 건강미와 섹시미를 발산하는 최고 패션 아이템이 됐다. 경찰이 자를 들고 다니며 치마길이를 재던 시절로부터 30여년 밖에 흐르지 않았다.
허벅지는 성, 풍요, 생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칠레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한 여자의 육체'라는 시에서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처럼 벌렁 눕는다/야만인이며 시골사람인 내 몸은 너를 파들어가고/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고 노래했다.
문제는 여성의 허벅지가 지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허벅지는 지방이 잘 축적되는 부위다. 그래서 허벅지 지방흡입수술을 받는 여성이 많다. 힙이 수직으로 떨어져 늘씬하게 보이는 라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윤장봉 나우비클리닉 원장은 "힙과 허벅지 사이에 있는 승마살을 없애면 힙업 효과로 인해 다리가 길어 보인다"고 말했다. 바비 인형의 영향이다.
유이의 '꿀벅지'는 보통 여성과는 거리가 멀다. 유이처럼 큰 키(1m73)라면 모를까 보통 여성들의 통통한 허벅지는 자칫 뚱뚱해 보이기 쉽다. 그래서 허벅지 안쪽 지방을 제거하기도 하지만, 이는 자칫 헤프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허벅지가 섹시미의 상징인 것만은 아니다. 성적 욕구를 참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청상과부들이 긴 겨울밤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참는 것은, 타오르는 성욕이었다. 병든 부모에게 허벅지살을 떼어 먹여 살려냈다는 수많은 효자 이야기는 허벅지의 또다른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세멜레의 뱃속에서 아기를 꺼내 허벅지를 찢어 아기를 그곳에 넣고 키웠다. 석달 후 제우스의 허벅지에서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