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성품이 착하고 선량한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법 없어도 살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주위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농담 삼아 "나는 법 없으면 못 살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필자를 비롯한 법조인이나 법조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법 없이는 생계를 유지하지 못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법조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만 법 없으면 못 살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모두 법 없으면 못 살 사람들이다. 특히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천성이 착하고 선량한 사람일수록 현실적으로는 법 없이는 못 살 사람, 법의 보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성품이 착하고 선량한 사람을 두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 배후에는 '법'이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 귀찮게 하는 존재, 얽어매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물론 법에는 그런 속성이 있다. 법이 도덕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그 강제력에 있다. 도덕은 사람이 양심에 의해 스스로, 자발적으로 지키기를 기대하지만, 법은 지키도록 강제하는 힘이 있다. 국가권력에 의하여 그 집행이 강제되는 것이다. 그래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은 법에 의하여 강제하지 않더라도 법이 요구하는 바를 스스로 잘 따를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는 그 표현에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선량한 사람'에게는 법이 아무런 불편함을 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천성에 따라 착하게 살다 보면 저절로 법을 지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른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과 반대인 사람, 즉 천성이 착하지 못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폭력적인 사람, 남을 속이기 좋아하는 사람, 약속 어기기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 남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사람, 제멋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공중도덕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법은 그 사람들의 나쁜 행동을 억제하고 규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법은 불편하게 하는 존재, 귀찮게 하는 존재, 얽어매는 존재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법 없으면 좋아할 사람들' '법이 없으면 살판이 날 사람들'이다.
법이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법의 보호 아래, 이른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선량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마음 놓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해 왔던 그 사람들은 '법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고, 오히려 그 반대의 사람들이야말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 '법 없으면 좋아할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에 대한 종전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법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는 존재라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의 확립, 법치주의의 생활화를 가져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선량하게 살아가는 유토피아적인 사회가 온다면, 그때는 그야말로 법이 필요 없고, 모든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필자와 같이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생계수단을 잃어버리게 되어 직업전환을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