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에 두 번이나 피폭되고도 장수하다가 93세를 일기로 숨진 일본 노인의 삶이 미국에서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7일(현지시간) B섹션 19면 부고면에 “2차세계대전 때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었던 야마구치 쓰도무 씨가 이틀전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고 사진과 함께 전해 눈길을 끌었다. 한 사람이 원자폭탄에 두번이나 피폭된 것도 희귀하지만 평균 수명이상으로 장수한 사실에 미국 독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연은 이렇다. 1945년 8월 6일 아침 미쓰비시중공업에 근무하던 그는 히로시마에 출장을 와 있었다. 그가 출근을 위해 전차에서 내리던 순간 ‘리틀 보이(Little Boy) 디바이스’로 불린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됐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중심에서 그는 불과 2마일(3.2km)도 안되는 거리에 있었다. 폭발의 엄청난 굉음으로 고막이 파열됐고 화염으로 상반신이 화상을 입었다. 그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원자탄의 폭발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됐고 8만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야마구치 씨는 그날 밤을 히로시마의 한 대피소에서 보내고 이틑날 고향인 나가사키로 돌아왔다. ‘뚱보(Fat Man)’라는 이름의 두 번째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된 것은 9일. 이번엔 7만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두번 째 폭탄이 터지던 당시 야마구치 씨는 나가사키의 미쓰비시 중공업 사무실에서 상사에게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3월 영국의 신문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사무실에 며칠전 히로시마에서 본 것과 똑같은 하얀 섬광이 가득찼다”고 묘사하며 “히로시마의 버섯구름이 나를 따라왔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엿새 후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했다. 두 차례 원자탄으로 인한 상처를 치료한 야마구치 씨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주일미군을 위해 일을 하다가 교사로도 근무한 뒤, 다시 미쓰비시 중공업에 복귀했다.
뉴욕타임스는 두 차례 원자탄 공격을 받고 생존한 이른바 ‘니쥬 히바쿠샤(2회 원폭 생존자)’는 165명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주인공은 야마구치 씨가 유일하다고 전했다.
1948년에 출생한 그의 딸 야마사키 도시히코 씨는 어머니가 나가사키 원폭의 낙진으로 검은색 비와 독성물질로 흠뻑 젖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어머니는 신장암과 간암에 시달리다 88세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야마사키 씨는 “우리 자식들도 어머니를 통해 방사능 낙진의 독을 안고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녀의 오빠 역시 암으로 59세에 사망했고 언니는 평생 만성 질병에 시달렸다. 야마구치 씨도 93세까지 장수했지만 사인은 위암이었다.
근년에 야마구치 씨는 핵무기에 반대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 왔다. 사실 이전에는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이 싫어서 반핵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딸 야마사키 씨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건강하셨기 때문에 원폭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죄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야마구치 씨가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회고록을 쓰고 2006년 두 차례 피폭후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다룬 다큐물에도 출연했다. 그는 ‘니쥬 히바쿠’라는 제목의 이 다큐물에서 뉴욕의 UN본부로 와서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6월 나가사키에서 가진 강연회에서 그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핵무기 폐기를 요청하는 편지를 쓴 사실과 영화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찾아와 원자탄에 관한 영화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한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야마구치 씨는 두 차례나 피폭되고도 살아남은 것에 대해 철학적으로 답했다. 지난해 8월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히로시마든 나가사키든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 후 이어진 모든 것은 하나의 보너스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