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슈퍼히어로' 전우치의 좌충우돌 요괴 소탕기 |
'타짜'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의 취향은 참 동양적이고 토속적이다. 거대한 기업 음모보다는 부동산 사기에(범죄의 재구성), 포커보다는 화투에(타짜) 끌리더니, 판타지 액션 영화의 주인공을 마법사가 아닌 도사로 만들었다. 누구보다도 '재미있는' 캐릭터, 대사, 이야기에 올인하는 최동훈은 그야말로 독특한 소재를 지닌 신작 '전우치'를 통해 이번에도 그 '재미'라는 놈을 신나게 쫓는다.
500년 전 '만파식적'이라는 전설의 피리가 요괴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그 무렵, 임금 앞에서 둔갑술을 펼치는 등 쇼를 하던 망나니 도사 전우치(강동원)가 우연히 요괴와 싸우게 된다. 당대 최고의 도인 화담(김윤석)과 신선들은 요괴의 행적을 쫓다 전우치의 스승 천관대사(백윤식)에게까지 찾아간다. 얼마 후 천관대사가 살해당하고 범인으로 몰린 전우치는 자신의 개 초랭이(유해진)와 함께 그림 족자에 봉인 당한다. 그리고 500년 후 봉인에서 풀려난 전우치는 마지못해 요괴 소탕 임무를 맡고, 그때까지 검은 속내를 숨겨온 화담과 대결하게 된다.
'전우치'는 확실한 캐릭터 영화다. 드라마 가득한 이야기를 복잡하고 세련된 구성으로 밀어붙이던 최동훈의 전작들과는 꽤 다르다. 상당히 단순명쾌해 후반부엔 살붙임이 다소 모자라 보이기까지 하는 이 영화 안에서 가장 큰 성과는 전우치 캐릭터다. ('아바타'를 본 관객들에게는) 스펙터클하다고 볼 순 없지만 아기자기한 CG 배경들 속에서 깐죽대면서도 멋스러운 캐릭터 전우치는 눈에 띈다. 그가 화담과 한판승부도 벌이고, 조선시대에 만난 미모의 양반 여인이자 현대에서 그녀와 꼭 닮은 배우 코디네이터 인경(임수정)과 러브 라인도 형성하며, 원래 개였지만 사람이 된 초랭이와 슬랩스틱 코미디 호흡도 보여주는 등 이야기의 줄기는 슈퍼히어로 무비에 맞는 요소들을 지녔다. 지붕 위를 타고 다니고, 분신술을 펼치며 요괴와 싸우는 전우치의 액션 신도 날카롭고 스피드하다기보다는 둥글둥글 유들유들한, 영화에 어울리는 재미를 과시한다. 그 사이 주진모 송영창 김상호가 연기하는 좀 모자란 신선 3인방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며 '전우치'는 뺀질뺀질한 인간적 캐릭터들의 잔치가 된다.
전작들에 비하면 듬성듬성 구멍을 뚫어놓은 영화지만, 나름 허당의 즐거움이 있다고 할까.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대사 톤에 반 박자 빠른 커트와 편집의 리듬감이 얹혀서 신나는 기운도 있다. 최동훈 영화가 늘 지녔던 구성의 짜릿함이나 유능한 배우들(김윤석 임수정 등)의 폭발력은 약하지만, 창의적인 소재와 한국영화가 도전하지 못했던 장르의 즐거움을 발견케 했다는 점에선 손을 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