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 금융회사 비서로 일하던 김모(31)씨는 2005년 봄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신혼은 짧았다. 김씨는 남편의 외도로 결혼 직후부터 별거하다 7개월 만에 헤어졌다. 임신 사실은 이혼하고 알았다. 김씨는 아기를 낳아 3년간 혼자 힘으로 길렀다.
서류 번역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리던 김씨는 작년 11월 벌이가 줄어 아기를 남편에게 보냈다. 김씨는 인천 남동구의 주공아파트에 혼자 산다. 아기와 단둘이 살던 '싱글 맘'에서 아기조차 곁에 없는 '싱글'이 된 것이다. 김씨는 "혼자가 된 뒤 무엇보다 냉장고를 열 때 우울해진다"고 했다.
김씨는 700L짜리 대형 냉장고를 쓴다. 혼수로 마련한 것이다. 냉장고 속엔 김치와 멸치볶음, 생수병뿐이다.
김씨는 "딸을 보낸 뒤 텅 빈 집을 보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남들은 여자 혼자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하루빨리 안정된 직장을 잡아 딸과 둘이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씨의 취직 전망은 요원하다.
한국인 다섯 집 중 한 집이 혼자 산다. 1990년 열 집 중 한 집이 채 안 되던(9.0%) 1인가구가 19년간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혼자 사는 집은 크게 네 부류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안정된 수입을 가진 '골드 미스'와 '골드 미스터'는 극히 일부다.
급속하게 불어난 것은 ▲박봉과 취업난으로 결혼할 엄두를 못내는 20~30대 1인가구 ▲경제위기의 후폭풍으로 몰락한 40~50대 이혼자 ▲고령화로 꾸준히 증가중인 60대 이상 독거노인 등 나머지 세 집단이었다.
본지 취재팀이 만난 혼자 사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고독'과 '빈곤'을 독신생활의 이중고로 꼽았다. 그러나 이들이 그런 고통을 겪게 된 과정은 어느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랐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혼자 사는 집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숫자가 늘어난 집단은 60대 이상 독거노인이다. 독거노인은 2000년 70만8985명에서 2009년 118만9133명으로 늘어났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사는 조하선(70)씨도 그중 한 명이다. 30년 전 남편과 사별한 조씨는 빌딩 청소와 가사 도우미를 하며 혼자 네 아들을 키웠다. 그중 큰아들 내외와 함께 살다 5년 전 사이가 나빠져 혼자 나와 살기 시작했다. 조씨는 희망근로로 월 30만원씩 번다. 연립주택 지하 단칸방 월세 20만원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조씨는 "솔직히 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다"고 했다.
"요즘은 관절이 아프고 기침이 나서 가사 도우미 일도 할 수가 없어요. 셋째 아들은 일찍 죽었고, 둘째는 장애인이에요. 다른 둘도 벌이가 변변치않아요. 고생하며 자식들을 키웠지만, 내가 아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나도 자식들 도울 능력이 없고….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나아요."
전문가들은 "독거노인이 늘어나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한국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20~30대와 40~50대 1인가구가 급증하는 것이 좀 더 위협적"이라고 지적했다. 한창 열심히 일하며 자녀를 낳아 길러야 할 20~30대와 40~50대 1인가구가 늘어나는 것은 다음 세대 한국사회의 체력을 미리부터 갉아먹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혼자 사는 40~50대의 경우, 2000년 54만7638명에서 2009년 94만2953명으로 1.7배가 됐다. 이들의 인생행로는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한국사회가 감당해야 했던 충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변미리 연구위원은 "40~50대 1인가구는 대부분 결혼 경력이 있는 이혼자"라며 "경제적으로 재기하지 못해 비자발적으로 독신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윤영길(56)씨는 서울 영등포본동에 있는 6평(20㎡)짜리 반지하방에서 3년째 혼자 살고 있다. 희망근로로 월 89만원을 번다. 냉장고에는 백김치·파김치·마늘종뿐이다. 소주는 없다. 윤씨는 "괜히 사다놓으면 먹게 되고, 마시기 시작하면 많이 마시게 되니까 꾹 참는다"고 했다.
그는 젊어서 옥외광고판을 제작하는 일을 하다가, 장사가 안 돼 2001년 남매를 한국에 남겨두고 부인과 둘이 미국으로 떠났다. 부부가 친척 집에 머물며 닥치는 대로 맞벌이해서 6년 만에 캘리포니아주 소도시에 조그만 집을 마련했다. 그러나 모기지를 감당하지 못해 반년 만에 차압당했다.
그는 부인과 이혼하고 혼자 귀국했다. 옥외광고판 만드는 일과 일용직 막노동을 병행하다 일감이 떨어져 두 달 전 희망근로를 신청했다.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민센터와 동네 골목길을 청소한다. 급여의 3분의 1은 상품권으로 받아 밥과 부식을 사고 나머지로 방값 30만원·각종 공과금 10만원·난방비 2만~6만원을 낸다.
아들(27·전지조립공장 생산직), 딸(29·음식점 주방장)과 함께 살 생각은 없다. 그는 "자식들도 각자 벌어서 먹고살아야 할 판인데, 나까지 짐이 되긴 싫다"고 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처지가 되니 억울하게 교통사고를 당한 느낌이에요. '나이 먹어서 아프면 어떻게 하나' 싶고 '집에 강도가 들어도 누구 하나 도와줄 것 같지 않다' 싶어요. 저축을 못해서 답답하죠. 외롭지만 재혼을 할 능력이 안돼요. 처량해질 때마다 '환갑도 안 됐는데 나쁜 생각 하지 말자'고 혼잣말을 하지요."
20~30대 1인가구가 늘고 있는 현상의 배후에는 갈수록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나쁜 일자리'가 늘어나는 현실이 있다. 학업을 마친 뒤 직장을 구해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우던 과거 젊은이들과 달리, 이들은 고용불안과 박봉 때문에 자기 힘으로 가정을 꾸릴 전망도, 능력도 없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윤모(32)씨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증권회사 사무직을 거쳐 지난달부터 물류회사 사무직으로 월 130만원을 벌고 있다. 부모는 윤씨가 14살 때 이혼해 각자 고향으로 내려갔다. 윤씨와 남동생은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형제는 각자 방을 구해 따로 살고 있다.
윤씨는 "텅빈 방에 혼자 돌아가면 밥 해먹기가 너무 싫다"고 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2인분 먹고 저녁 때는 일찍 자버리곤 한다. 그는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다.
"외로워서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지만, 지금 사는 10평(33㎡)짜리 방에 둘이 살기는 무리인 것 같아요. 전셋집이라도 얻으려면 5000만원은 있어야 할텐데, 한 달에 30만원씩 저축해서는 아득한 일인 것 같아 조바심이 나고 답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