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흑백 TV가 중계한 아폴로11호의 달 착륙 장면은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한 소년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소년은 커서 파일럿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소년은 '한국의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로 불리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1991년 3월 들어갔다. 18년이 지난 지금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 프로젝트 연구 책임을 맡게 됐다.
이대성(53)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연구본부장은 "중학교 때 '달 착륙'이란 사건을 본 후 비행물체처럼 날아다니는 것을 만드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됐다"며 "공대에 진학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그는 '파일럿'이란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루기 위해 틈틈이 항공 관련 과목을 수강했다. 25세가 되던 해 이 본부장은 미국 아이오와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마침내 그의 꿈에 한발 다가설 기회가 왔다. 그는 그곳에서 '전산유체역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공기의 흐름을 컴퓨터를 이용해 수학적으로 풀어보는 공부였다.
"음속으로 나는 항공기에서 나오는 '충격파'를 연구했는데, 남들은 그런 재미없는 것을 왜 하느냐고 했지만 저한텐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어요."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항공우주 기업 텍스트론(Textron) 그룹의 연구소에 들어가 5년 동안 항공기 엔진 연구에 매달렸다.
이 본부장이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들어가게 된 건 아들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1989년 휴가를 내 당시 6살이던 큰아들과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었다. "아들 용석이가 '이 비행기는 한국 사람이 만든 거냐'고 묻는 겁니다. '미국에서 만든 거란다'라고 했더니 아들이 '한국사람들이 똑똑하다는데 왜 비행기도 못 만드냐'고 하더군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본부장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고 불리는 개인용 항공기(PAV·Personal Air Vehicle) 프로젝트는 모든 항공 관련 연구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우리 자동차나 휴대전화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전 세계 항공 시장에서 우리나라 점유율은 1%도 안 된다"며 "개인용 항공기 프로젝트로 우리나라가 새로운 분야에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