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핵 문제를 놓고 정치권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이 최근 2차 핵실험에 이어 지난 10년 가까이 국제사회를 향해 부인해왔던 '우라늄 농축' 카드까지 꺼내 들고 나온 게 계기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햇볕정책을 표방하며 남북정상회담에서 6·15 선언을 채택한 지 꼭 9년 만이다.
6·15 선언 9주년을 맞은 15일 정치권에선 "현 상황의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지적과 함께, '6·15, 10·4 선언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북은 애초부터 핵무기 보유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왔는데, '북핵은 협상용'이라는 잘못된 전제 아래 '햇볕을 쬐어 핵을 벗긴다'는 잘못된 정책 처방을 펼쳐 왔다는 것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이날 당 지도부 회의에서 "이명박 정권은 과거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6·15, 10·4 선언의 문제점과 그 법적 효력을 다시 한번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권은 출범 초기에 두 선언에 대해 승계할 것과 승계하지 못할 것을 분명히 했어야 하는데, 이런 문제의식 없이 모든 남북 간 합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북한은 빚 독촉하듯 두 선언의 이행을 남북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이라고 떼쓰고 있다"면서, 두 선언에 대한 위헌성까지 거론했다.
이 총재의 이 발언은 사실상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지난 10년간 표방해온 햇볕정책과의 단절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됐다. 최근 북핵 문제와 남북 경색의 책임을 현 정부의 대북 강경기조로 돌리는 민주당의 공세 속에 '6·15, 10·4 선언을 존중한다'며 전 정부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온 정부를 향해 더 이상 본질을 외면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한나라당과 전문가 그룹 내에서도 이른바 '햇볕정책 책임론'이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날 한나라당 북핵특위가 개최한 회의에서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 핵 문제는 애초부터 북이 핵을 포기할 것이며, 협상으로 그렇게 유도할 수 있다고 믿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판단 착오"라고 말했다. 협상 의지가 없는 북한을 상대로 협상을 시도한 것 자체가 북한에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돈을 벌어준 셈이란 것이다.
윤 교수는 "북핵 문제와 남북 경색의 책임이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있다는 주장은 이전 정부부터 핵개발을 준비해온 북한이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지난 3월 평양 방문 제의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한 것만 봐도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그동안 부인해온 우라늄 농축 문제를 스스로 천명하고 나온 만큼 이제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자명해졌다"며 "북한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해온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북한 핵개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미 클린턴·부시 전임 행정부의 책임론까지 거론했다. 정 의원은 "북한이 그동안 클린턴·부시 행정부와 협상을 해온 게 기만전술이었음이 분명해졌다"며 "결국 협상으로 북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려 했던 전임 미국 행정부의 전략에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을 계속 대화와 포용으로 대하라는 햇볕 논자들의 주장은 북한 핵개발에 시간을 더 주자는 기만"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남북 평화와 번영 정책을 적극 추진해 상당한 성과를 냈다"며 "비현실적 대북정책으로 상황을 악화시킨 이명박 정부는 6·15, 10·4 선언 정신으로 돌아가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