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소녀 에펠레티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서너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는 때가 잔뜩 낀, 구호품인 듯한 노란 원피스 차림이었다. 부모를 잃고 영양실조 상태로 버려졌던 소녀는 몇 해 전 말라위 수도 릴롱궤 외곽의 이곳 카유마 고아원으로 왔다.

"세수할 물도 마실 물도 없어요. 담요나 학용품도 모자랍니다." 카유마 고아원의 친바(29) 원장이 한숨을 쉬었다. 120여명의 원생 중에서 신발을 신은 아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들은 환기도 잘 되지 않는 고아원 흙 바닥에서 잔다. 말라위 전역에 이보다 더 열악한 고아원은 셀 수 없이 많다.

6일 이곳을 방문한 글로벌 화장품 업체 뉴스킨(Nuskin) 관계자들이 준비했던 볼펜 수백 자루와 축구공, 담요는 순식간에 동났다. "그래도… 아이들이 하루 두끼는 먹어요." 친바 원장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3년 전에 비하면 모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졌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8년 전 에이즈 병마가 할퀴고 간 남부 아프리카의 빈국(貧國) 말라위에는 인구의 10%가 넘는 150만명의 고아들이 생겨났다. 그래도 음친지 마을의‘희망의 집’고아원 원생들의 표정에는 구김살이 없다.

에이즈와 고아

1964년 영국에서 독립한 말라위는 국민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빈국이지만 르완다나 우간다처럼 대규모의 내전을 겪지는 않았다. 그런 이 나라에 2001년 재앙이 밀려왔다. 에이즈(AIDS)였다. 그해만 8만명이 숨졌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말라리아도 창궐했고 2005년에는 가뭄이 닥쳤다.

고아원을 겸하는 릴롱궤 음텐데레 학교 여학생 레킬레나(9)는 얼마 전 이곳에 왔다. 레킬레나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은 지 얼마 안 돼 병으로 사망했다. 아버지는 행방을 감췄다. 다리 밑에서 레킬레나를 키우던 할머니가 죽자 삼촌은 구걸을 강요했다.

음텐데레 학교의 빅터(45) 교장은 "말라위 전역의 고아는 150만명가량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라위 전체 인구 1400만명의 10%를 넘는 숫자다. 팝스타 마돈나가 2006년 아들을 입양했던 음친지의 희망의 집(Home of Hope)처럼 그나마 어느 정도 시설을 갖춘 고아원은 극소수다.

칼롤로 마을의 주민과 아이들이 배급받은 구호식량‘바이타밀’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원조에서 생산으로

음탈리만자 마을의 나폴레온 좀베(50) 촌장은 "2001년 매일같이 내 집 현관을 두드리며 먹을 것을 달라고 호소한 사람들이 1만명이었다"고 했다. 그는 고민했다. 서방에 계속 신세 지며 살아야 할 것인가, 자립할 것인가. 그는 '너리시 더 칠드런(Nourish the Children) 운동'을 주목했다.

미국 유타주에 본사를 둔 뉴스킨이 세계 어린이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해 펼치는 운동이다. 제3세계 어린이들의 영양 섭취를 위해 개발된 쌀죽이나 옥수수죽 형태의 식량 바이타밀(Vita Meal)은 이 운동을 통해 지금까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1억5000만끼 분량이 공급됐다.

"우리 말라위에 바이타밀 공장을 만들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좀베는 의아해하는 뉴스킨 관계자들을 설득해 2004년 릴롱궤에 공장을 세웠다. 6일 방문한 바이타밀 공장에서는 옥수수와 콩을 굽고 섞은 뒤 영양소를 넣고 포장하는 공정이 쉴 새 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하루 6000포대 1만2000㎏의 바이타밀은 음텐데레 학교를 비롯해 전국의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카유마 고아원의 아이들의 건강은 하루 두 끼 먹은 바이타밀 덕이었다. 공장 노동자는 물론 농부와 운송업자 등 500명이 넘는 말라위 사람들에게 새 일자리도 생겨난 셈이다.

좀베는 2007년 뉴스킨과 함께 자기 고향 음탈리만자에 '가족 독립을 위한 농업학교'를 세웠다. 7일 첫 졸업식에서 농부 60명은 가운을 입은 채 전통춤을 추면서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생 윌리엄(34)과 수전(30) 부부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해 보니 옥수수 수확이 에이커(약 4047㎡)당 25상자나 늘었다"며 "이제 예전처럼 끼니를 거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타밀을 먹고 있는 말라위의 고아들.

그래도 끝없는 굶주림은…

8일 오전 10시, 릴롱궤에서 서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칼롤로 마을 공터에 주민 1000여 명이 앉아 있었다. 뉴스킨의 바이타밀 배급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아 30끼 분량의 식량인 2㎏짜리 바이타밀 한 포대를 타기 위해 꾀죄죄한 어린이들이 아침 6시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트럭에 싣고 온 바이타밀을 내릴 무렵 1000명이 더 와 줄을 섰다. 1인당 한 포대만을 배급하기 위해 미리 종이 표를 나눠주고 바이타밀과 교환했다. 배급에 참여한 기자가 주민들에게 바이타밀을 나눠주고 있을 때 한 어린이가 팔을 붙잡더니 기자가 바닥에 떨어뜨렸던 종이표를 내밀었다.

웃고 있는 아이의 눈망울이 맑았다. 몰래 두 포대를 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차를 타고 마을을 나올 때 바이타밀을 들고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3~4㎞까지 이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뉴스킨의 스티브 런드 부회장은 "지난해에는 말라위의 한 교회에서 바이타밀을 끓여 줬는데 좀 모자랐다"며 "30여명의 아이가 남은 바이타밀을 한 숟가락씩만 떠서 나눠 먹는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말라위를 찾은 그는 "우리가 필요한 것보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 아이들이 얼마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뉴스킨의 전체 매출 중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하는 한국 지사(사장 유병석)도 올해부터 너리시 더 칠드런 운동에 본격적으로 동참했다. 일반인들도 웹(www.nuskinmall.co.kr) 회원으로 가입하면 한 포대당 20달러인 바이타밀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좀베 촌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묻자 봉투 하나를 꺼냈다. 말라위 곳곳에서 봐둔 1만4000에이커(약 5666만㎡)의 땅 견적서였다. 그는 "이 땅을 사고 트랙터와 비행기, 관개시설을 갖춰 농지로 일구면 말라위 전체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땅값 100만3000달러를 모으자고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마돈나의 입양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 아이(데이비드)가 미국에서 선진 교육을 받고 성장한 뒤 말라위로 돌아와 조국의 발전에 힘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그 입양이 비로소 말라위에 좋은 일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