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서울 강남구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하는 김모(34·외국계 회사 직원)씨는 꽃 장식비용 때문에 예식장측과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김씨는 "같은 날짜에 같은 장소에서 잇달아 세 쌍이 결혼하는데 아침에 장식한 꽃을 온종일 쓰면서 꽃값을 똑같이 다 받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예식장 직원은 "다들 그렇게 한다"며 "문제 삼는 사람은 손님(김씨)이 처음"이라고 했다.

지난 2월 결혼한 박종식(29·은행원)씨는 결혼사진 앨범이 둘이다. 하나는 예식장이 알선해준 업체에서 찍은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직접 고른 사진관에서 찍은 것이다.

박씨는 "전부터 봐둔 사진관이 있었는데 예식장에서 '사진은 꽃·폐백·방명록과 패키지라서 사진을 안 찍어도 비용을 빼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예식장 쪽 업체가 찍어준 사진이 마음에 안 든 박씨는 결국 추가로 70만원을 들여 원하는 사진관에서 다시 결혼사진을 찍었다. 박씨는 "패키지로 찍은 사진은 벽장에 처박아두고, 원하는 데서 찍은 사진만 벽에 걸어놨다"며 "부당한 상술이라는 생각에 돈이 아까웠다"고 했다.

이달 서울 강남구의 특1급 호텔에서 결혼하는 박모(34·회사원)씨는 "호텔측이 끈질기게 '남성 5중창 축가'를 권하기에 '도대체 소개비를 얼마나 받기에 이러느냐'고 따졌다가 호텔 직원과 큰소리로 다퉜다"고 했다. 박씨는 "말다툼이 벌어진 직후에도 호텔 직원이 계속해서 '다른 옵션'을 권유해서 황당했다"고 했다.

납득할 수 없는 가격 책정, 계약에 없는 팁을 현장에서 불쑥 요구하는 관행, 원치 않는 옵션 강요…. 신랑 신부를 울리는 결혼식 산업의 상술은 한둘이 아니다. 특히 '패키지' 형태를 띤 끼워 팔기 관행은 고질적 병폐로 꼽힌다. 결혼산업 전문가들은 복잡한 결혼 준비를 대행해주는 웨딩컨설팅 업체가 보편화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웨딩컨설팅업체는 1990년대 말 등장하기 시작해 2000년대 초부터 기업화·대형화·일반화했다. 현재 전국에 500여개 업체가 영업 중이다. 신랑 신부는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 웨딩컨설팅업체를 찾지만 이들은 사진 촬영·메이크업·드레스 대여·폐백 의상·신혼여행·축가 등을 패키지로 묶어서 원하지 않는 상품까지 떠안기기 일쑤다. '할인'을 위한 패키지가 아니라 '할증'을 위한 패키지인 셈이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정부 당국은 예식장과 웨딩컨설팅업체들의 횡포에 뒷짐을 지고 있는 형국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담당 직원은 "장례식과 달리 결혼식은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하는 행사라서 예식장에서 부당한 요구를 하면 소비자가 거절하고 다른 업체를 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따라서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하기는 곤란하고, 소비자가 개별적으로 한국소비자원에 민원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소비자가 어렵게 한국소비자원에 민원을 내도 '구제'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올해 이 기관에 접수된 민원 611건 가운데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액 혹은 일부라도 돌려주라는 결정이 나온 경우는 34건에 불과하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웨딩컨설팅업체들은 대부분 예식장·사진·드레스 대여 등 여러 항목을 하나로 묶어 총액으로 계약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그 중 일부 항목에 불만을 품어도 뚜렷하게 '얼마를 물어주라'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미 결혼식을 망쳐서 속을 태운 소비자들로선 또 한번 울화통만 터지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