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여배우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중국 본토 출신 여배우들의 약진에 입지가 나날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홍콩 여배우들은 “본토 여배우들이 홍콩 연예시장에 진출하면서 자신들이 실업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하소연한다. 지난 4월 18일 홍콩 현지의 한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한 홍콩 출신 여배우 우쥔루(吳君如·오군여)는 “본토 출신 여배우들이 정말 홍콩 여배우들보다 연기소질이 높으냐”며 “그들이 정말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혹시 감독이나 남자 배우들이 (성적으로)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기 때문이 아닌가”라며 본토 출신 여배우들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중국 본토 언론과 네티즌들은 “우쥔루 자신이 본토 여배우들의 홍콩 진출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박해 양측이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홍콩 여배우들은 영화상 수상에서도 본토 출신 여배우들에게 밀리고 있다. 지난 4월 19일 열린 제28회 홍콩 금상장(金像奬)영화제 시상식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여우주연상은 중국 본토 안휘성 출신의 바오치징(鮑起靜·포기정)에게 돌아갔다. 반면 홍콩 출신의 천리윈(陳麗云·진려운)은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홍콩 영화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지난 1982년 만들어진 홍콩 금상장은 2004년까지는 홍콩 현지 여배우들이 여우주연상과 조연상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2005년부터는 본토 여배우들이 5년 연속 여우주연상을 싹쓸이하고 있다. 올해 금상장 여우조연상의 경우도 당초 본토 출신의 여배우가 유력시되다 시상식 직전에 “홍콩 영화발전을 위해 만든 상이 홍콩 영화인들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정치적’ 불만이 쏟아져 나오자 홍콩 출신인 천리윈에게 돌아갔다.
실제 본토 출신 여배우들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홍콩 영화산업을 거의 평정하다시피 했다. 이들은 전문 연기학교나 배우학교에서 체계적인 연기교육을 받은 배우들이 주종을 이루어 ‘학원파(學院派)’라는 일종의 파벌까지 형성하고 있다. 지난 2007년과 2005년 홍콩 금상장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베이징 중앙희극학원 출신의 공리와 장쯔이(章子怡)가 대표적인 학원파 배우다.
반면 홍콩 여배우들은 대개 연기와 가수, 모델과 광고 등을 겸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토 여배우들보다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다. 올해 홍콩 금상장 작품상을 받은 영화 ‘엽문(葉問)’에서 본토 여배우인 슝다이린(熊黛林·웅대림)과 같이 출연했던 홍콩 출신의 남배우 전쯔단(甄子丹·견자단)은 최근 출연한 한 홍콩 현지 토크쇼에서 “중국 본토 여배우들은 대개 학원파이고 정말 연기에 적극적”이라면서도 홍콩 여배우들에 대한 평가에는 말을 아꼈다.
홍콩 여배우들의 어설픈 중국어 연기도 위상 추락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에서 제작된 영화의 경우 대개 더빙작업을 한 후 중국 본토로 들어간다.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둥화(廣東話)’는 본토에서 사용하는 ‘푸퉁화(普通話)’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더빙이 필수적이다. 액션스타가 대부분인 홍콩 남자배우의 경우 문제가 덜하지만 여배우들은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영화제작사나 투자사들도 남자 주인공은 홍콩인을 쓰되, 여자 주인공은 본토 출신을 쓰는 캐스팅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급팽창하고 있는 중국 본토의 박스오피스 시장을 염두에 둔 캐스팅 전략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한 두 편의 중국 영화 ‘매란방(梅蘭芳)’ ‘엽문’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홍콩 현지인(리밍, 전쯔단), 여자 주인공은 본토 출신(장쯔이, 슝다이린)이었다.
홍콩 여배우들의 영화 캐스팅이 줄어들자 수입 역전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홍콩 여배우와 본토 출신 여배우들의 수입역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월드스타가 된 본토 출신 장쯔이의 1997년 샴푸광고 출연료는 140위안(약 2만8000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여배우 수입 상위권은 모두 본토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본토 여배우들의 영화출연과 방송노출이 늘어나다 보니 광고촬영 등 부수입도 덩달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판 포브스지에 따르면 본토 출신의 장쯔이와 공리는 지난 한 해 동안 각각 7800만위안(약 156억원)과 4400만위안(약 88억원)을 벌어들여 여배우 수입상위 1위와 2위에 올랐다. 특히 장쯔이는 홍콩에서 시계, 보석류, 휴대폰 등 사치품 기업광고를 거의 석권하고 있다. 반면 지난 2005년만 해도 5100만위안(약 102억원)의 수입을 올리며 홍콩 최고의 여자배우로 군림하던 장바이츠(張柏芝·장백지)는 포브스 조사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촬영에 임하는 태도도 차이가 난다는 평가다. 홍콩 현지에서는 “홍콩 여자배우들의 경우 영화촬영을 취미활동 정도로 생각하지만, 중국 여배우들은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때문에 홍콩 여배우들은 촬영장에서 남자배우들과 농담을 나누거나 종종 스캔들을 내는 등 불미스러운 ‘사고’를 많이 치지만, 본토 출신의 여배우들은 생업에 임하는 자세로 촬영에 들어가기 때문에 ‘큐’ 사인만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연기에 임한다는 것이다. 영화 제작사나 투자자 입장에서도 굳이 많은 돈을 써가며 콧대 높은 홍콩 여배우들을 고용하기보다는 캐스팅 비용도 적게 들고 연기도 곧잘 하는 본토 출신의 신인 여배우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일부 본토 출신 여배우들은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몸로비’를 통해서 영화 출연과 광고촬영의 기회를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토 여배우의 경우 나이가 많고 못생겨도 실질적인 캐스팅 권한을 가지고 있는 영화 감독과의 스캔들이 종종 터진다. 월드스타 공리도 데뷔 초창기 장이머우(張藝謀·장예모)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장 감독과 결혼생활을 한 적이 있다. 장쯔이 역시 1997년 장이머우 감독이 촬영한 샴푸광고 모델로 전격 발탁되면서 월드스타로 도약하는 기회를 움켜잡았다. 때문에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공리에게 싫증난 장이머우가 장쯔이를 잡았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반면 ‘몸로비’를 거부할 경우 연예생활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말도 나온다. 영화 ‘색계(色戒)’ 출연 이후 가장 주목 받는 배우로 떠올랐다 돌연 중국에서 방송출연과 연예활동 금지처분을 받은 본토 출신 탕웨이(湯唯)는 “영화계 고위인사의 청을 거절해서 출연금지 처분을 받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진 바 있다. 당시 공식적으로 알려진 출연정지 이유는 “영화 속에서 반(反)민족주의 친일파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네티즌들은 “장쯔이의 경우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서 일본 기생으로도 출연하고, 일본판 플레이보이 모델로도 등장하는 등 중국인의 자존심을 구겼는데도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느냐”며 “다른 내막이 있을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임청하·왕조현 이후 대형 스타 부재
장백지도 섹스 스캔들로 인기 추락
홍콩 여배우들의 퇴조를 말해주듯이 지난 4월 19일 홍콩 금상장 시상식이 개최되던 날 현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은 여배우들도 거의 중국 본토나 대만 출신 여배우들이었다. 특히 본토 출신의 탕웨이, 저우쉰, 슝다이린 등은 시상식 입장 때부터 끝날 때까지 헤어스타일, 드레스, 구두, 액세서리 등 모든 것이 현지 언론과 카메라의 집중 취재 대상이 됐다. 과거 홍콩 여배우들에 비해 패션감각이 떨어져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던 본토 출신 여배우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반면 홍콩 여배우의 경우 대형 여자스타 부재현상이 15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시장을 평정했던 린칭샤(林靑霞ㆍ임청하)와 왕주셴(王祖賢·왕조현) 이후 대형 스타가 전무한 상황이다. 한때 장바이츠(張柏芝ㆍ장백지)가 이들의 뒤를 잇는 듯했으나 지난해 천관시(陳冠希·진관희) 섹스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이미지가 많이 추락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홍콩 연예계를 중심으로 ‘홍콩 여배우 가운데 남자를 우표수집하듯 모으는 여자 진관희가 있다’는 ‘집우녀(集郵女) 논란’까지 불거져 나오면서 과거 린칭샤의 중성적 매력과 왕주셴의 청순한 매력에 빠져있던 홍콩 남성들도 홍콩 여배우들을 ‘경시’하는 풍조마저 보이고 있다. 때문에 홍콩 여배우들의 인기회복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