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고든램지

4월 20일(현지시각)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 고든 램지(Gordon Ramsay·43)에겐 굴욕의 날로 기억될 듯하다. 영국의 음식전문지 '레스토랑 매거진'이 발표하는 '세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 그의 레스토랑 25개 중 단 한 곳도 순위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올해에도 1, 2위는 전통의 강자들이 차지했다. 과학 실험을 하듯, 재료의 과학적 특성을 활용한 요리(분자요리)로 유명한 스페인의 '엘 불리'(4년째 1위), 영국의 '팻 덕'이 그 주인공. 3위는 쐐기풀이나 너도밤나무 같은 기이한 재료의 요리를 선보이는 덴마크 요리사 레네 레드제피의 '노마'가 차지했다.

이변은 다른 데서 일어났다. 제이미 올리버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인 램지의 식당인 '레스토랑 고든 램지'(런던)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이 레스토랑은 지난해에는 13위를 기록했다.

서울 롯데호텔에도 분점을 낸 프랑스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 역시 이번‘베스트 레 스토랑’평가에서 순위가 떨어지는 굴욕을 겪었다. 사진은 피에르 가니에르 도쿄 레 스토랑의 요리.

램지는 연간 수입이 300억원이 넘는,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요리사이자 동시에 가장 입이 '더러운' 요리사다. 우리나라 케이블채널에서도 방송된 '헬스 키친'에서 그려졌듯, 그는 욕을 입에 달고 살며 스태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기도 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추락'(plummet)이라는 표현까지 썼지만, 그의 홍보대행사는 "(심사위원들이)점수를 박하게 매겼지만 진짜 중요한 건 고객의 평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음식평론가들은 "TV 출연, 사업 확장에 너무 정신이 팔린 것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받기도 한 고든 램지는 그동안 일을 너무 벌인 게 사실이다. '헬스 키친', '키친 나이트메어' 등 TV 프로그램 진행은 물론, 런던에 레스토랑 8개, 캐주얼 레스토랑 '폭스트롯 오스카', 그리고 펍 3개 등을 포함, 전 세계에서 25개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이 중 아시안퓨전 레스토랑인 '메이즈'(Maze)가 91위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다.

스타 요리사의 굴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7년 3위에 올랐던 피에르 가니에르는 지난해 6위로 순위가 밀리더니 올해는 9위가 됐다. 프랑스의 대표적 요리사 알랭 뒤카스의 추락도 눈에 띈다. 그의 레스토랑 '루이 15세'는 28계단이나 떨어진 43위에 머물렀고, 파리의 플라자 아테네 호텔에 위치한 그의 대표 레스토랑인 '알랭 뒤카스 오 플라자'는 아예 순위에 오르지 못했다.

전통적인 요리법을 중시하는 레스토랑 대신 실험성이 강한 요리를 내는 식당들이 약진한 것도 올해의 특성 중의 하나. 블루리본 서베이의 김은조 편집장은 "미슐랭 가이드가 좀더 보수적인 쪽이라면, 레스토랑 매거진의 리스트는 요리 미학에 충실하고, 좀더 실험적인 레스토랑을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무가리츠(4위), 아르작(8위), 엘리니아(10위), 라스트랑스(11위) 같은 식당 평가가 좋은 것은 맛은 물론 시각적인 플레이팅(접시 꾸미기), 창의성 등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식당이 좀더 우대받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미식의 나라'라는 호칭은 미국에도 어울리는 이름이 될 것 같다. 프랑스와 미국이 각각 8개의 자국 레스토랑 이름을 리스트에 올렸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각각 6개씩 50위권에 들었다. '세계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경우, 미슐랭 가이드에 비해 "아시아권을 홀대한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올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일본의 '레 크레아시옹 드 나리사와'(20위), 싱가포르의 '이기스'(45위)가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