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광객들의 한국 미식 투어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솥뚜껑 삼겹살'이란다. 옛날 부뚜막의 가마솥 뚜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솥뚜껑 불판 위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한국적인 방식으로 서민 음식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하는 가이드북이 많아서다.
오로지 고기를 굽기 위한 솥뚜껑 불판이 처음 상업화된 것은 1995년. 당시 의류업을 하던 이환중(51·현대외식 대표)씨가 주방용품으로 업종을 전환하면서 개발, 특허 출원했다. 이씨는 시골집에서 화로 위에 가마솥 뚜껑을 올려놓고 고기를 구워먹던 기억에 착안했다. 예전에는 솥뚜껑 손잡이가 아래쪽으로 가도록 해서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씨는 손잡이가 보이도록 하고 솥뚜껑 아래 기름 받침대까지 붙여 불판을 만들었다.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단숨에 80만개가 팔려나가며 전국에 '솥뚜껑 삼겹살' 열풍이 불었다.
솥뚜껑 불판은 돔 형태여서 열이 불판 전체에 골고루 전달되고, 열 손실이 적다. 꼭지를 중심으로 동심원의 돌기가 있어 고기가 미끄러지지 않아 구조적으로도 고기 굽기에 실용적이다. 디자인적으로 솥뚜껑 불판이 가지는 의미는 "디자인은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것. 솥뚜껑의 쓰임새를 바꿔 불판으로 훌륭하게 전용한 것처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른 맥락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것도 중요한 디자인의 영역임을 일깨워줬다.
오창섭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필요에 의해 여기저기에 있는 사물을 모아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을 문화용어로 브리콜라주(bricolage)라 하는데 솥뚜껑 불판은 한국판 브리콜라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향토적인 생활용품인 솥뚜껑을 재소비하는 양상도 재미있는 부분. 시골집 가마솥에 깃든 향수를 끌어내 각박한 삶에 지친 서민들의 애환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감성 디자인이다.
솥뚜껑 불판 이후 가마솥 모양의 '솥단지 불판'이 나오는 등 여러 가지 기능성 불판이 나왔다. 하지만 솥뚜껑 불판처럼 한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히트 불판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