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에 있는 한 멀티방. 대학생 최모(22)씨는 2시간이 넘는 빈 강의 시간을 이용해 친구 둘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최씨는 "계속된 수업에 지쳐, 쉬면서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서 왔다"며  "친구들 간에 노래방에 가자, 게임방에 가자는 등 종종 의견이 충돌할 때가 있었는데 멀티방이 생긴 후 갈등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C세대(Contents Generation)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즐기려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노래면 노래, 게임이면 게임이라는 한정된 욕구가 아닌 노래, 게임, 웹서핑 등을 한 공간에서 해결하기를 원하는 복합적이면서 즉흥적인 욕구로 뭉친 세대를 위한 공간이 바로 멀티방이다. 노래방, PC방, 콘솔(Console)방, DVD방 등이 합쳐진 개념이라 생각하면 쉽다. 시간당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PC와 대형화면, 노래방 기계, 게임기 등이 구비된 방에 들어가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어 젊은층, 특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인기가 높다. PC방, 노래방 등이 포화 상태로 성장이 멈춘 가운데 새롭게 떠오르는 '방' 문화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노래 + PC + DVD에 최근엔 위(Wii)까지
젊은층에 인기 끌면서 창업 문의도 급증

멀티방 사업은 2007년 5월 관련법 개정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당시 게임산업 진흥법이 개정되면서 '복합유통게임제공법'이라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본격적인 사업화가 시작된 지 2년이 돼가지만 아직 사업장 수는 많은 편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전국의 멀티방 수는 43개에 불과하다. 3만개가 넘는 노래방과 2만개가 넘는 PC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치다. 그러나 극심한 경기 불황으로 PC방, 노래방 등은 폐업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지만 멀티방은 예외다. 현재 7개 멀티방을 운영 중인 S멀티방 관계자는 "올해 목표로 한 가맹점이 50개 정도"라고 밝혔다. 작년의 경우 하루 한두 건에 불과하던 창업 문의도 최근에는 5~6건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닌텐도에서 개발한 게임기 위(Wii)가 확산되면서 멀티방의 입지는 더욱 높아졌다. 가정용 게임인 위를 구입하지 않고 즐기려면 멀티방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서울 신림동의 이나은(20)씨는 "TV에서 위 광고를 보고 해보고 싶어 멀티방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M멀티방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위를 구비해 놓았는데 전화로 문의하거나 실제 방문해 위를 즐기는 손님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이용자 수가 적은 편이지만 이용해본 사람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멀티방을 이용한다는 이용석(24·경기도 고양시)씨는 "컴퓨터하고 놀다가 지겨우면 영화보고, 그러다 재미없으면 게임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정말 좋다"고 말했다. 창업 상담 업체의 한 관계자는 "멀티방의 경우 가게 회전율이 보통 30~40% 정도 돼 이용자가 넘치는 건 아니지만 단골고객이 많은 편"이라며 "앞으로 인지도를 넓혀가는 게 멀티방 사업자의 주요 과제"라고 밝혔다.

‘제2 모텔 아니냐’ ‘탈선 조장’ 우려 목소리
 문광부 “청소년실 구비 등 기준 강화 방침”

"아저씨, 위 두 시간으로 해주세요."
지난 3월 31일 오후, 서울 창천동 번화가의 지하에 위치한 M멀티방에 고등학생 두 명이 들렀다. "처음 방문한다"는 이들의 말에 로비 직원이 기기 사용법과 게임 방법을 설명해줬다. 위를 하다 지겨우면 버튼 하나로 PC나 영화 모드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처음 오셨으니 오늘은 음료수를 서비스로 드릴게요. 그리고 열 번 방문해 쿠폰 도장을 모으면 피자를 무료로 드려요." 직원을 따라 들어가자 복도 양 옆으로 방이 줄지어 있어 마치 고시원이나 원룸을 연상시킨다. 방은 10㎡(3~4평) 남짓 하는 2인용이 대다수지만 여럿이 즐길 수 있는 대형방도 있다.

신을 벗고 방에 들어가자 127㎝(50인치) 대형 TV가 일단 눈에 띈다. 그 옆으로 컴퓨터와 노래방 마이크, 각종 게임기가 놓여있다. 선반 위 메뉴판에는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있다. 24시간 이용 가능하기 때문에 밤을 이곳에서 새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한 종업원은 "PC방과 달리 진짜 방 구조로 돼 있어 밤새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종업원은 "바닥에 강화마루를 깔아 신을 벗고 들어오도록 했더니 방 같은 편안한 느낌이라고 고객들이 좋아한다" 고 말했다.

신곡이나 신규 DVD, 신종 게임 타이틀 업데이트도 바로바로 이뤄진다. M멀티방 관계자는 "콘텐츠 확보가 하나라도 늦어지면 고객들이 바로 '전문 업소가 낫다'는 불평을 한다"며 "전문 업소와 똑같은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멀티방 탄생 당시부터 제기된 문제도 있다. 멀티방 사업 초창기, 구체적 행정규제가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몇몇 업체는 소비자들에게 멀티방을 '제2의 모텔'로도 제공했다. 모텔보다 반 이상 싼 가격으로 밤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지갑이 얇은 10대 학생들이 선호했고, 이는 '멀티방이 10대들의 탈선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야간에는 청소년 출입을 막기 위해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게 원칙이나 "다음에 가져오라"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2년 전 고등학교 때 멀티방을 자주 찾았다는 대학생 김모(20)씨는 "여자친구랑 놀기 좋은 장소를 찾다가 멀티방을 알게 됐고 이후 자주 찾게 됐다"고 했다. 그는 "가끔은 놀다가 차가 끊기면 야간 정액 요금을 내고 밤을 보낸 적도 있다"며 "엄격하게 신분증 검사를 하지도 않았고 고등학생인 걸 알면서도 봐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실제 일부 업소는 방 안에 침대나 샤워시설을 갖춰 놓기도 했다. 오락 이상의 목적을 제공하는 이들 업소는 '멀티방'이라는 이름을 쓰긴 하지만 단기 임대업으로 등록해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풍속을 해치는 시설을 보유한 곳은 멀티방에 속하지 않는다"며 "멀티방에 대해 청소년실을 따로 구비하도록 하는 등 시설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S멀티방 관계자 또한 "문란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멀티방은 실제 멀티방이라 할 수 없다"며 "멀티방이 퇴폐적이라는 인식 때문에 건전하게 운영되는 진짜 멀티방들의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멀티방 창업 문의 전화가 오면 꼭 침대나 샤워시설 얘기를 꺼내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 위(Wii) 전용카페 등장 |

이용 연령층 다양… 대학가 주변 확산

가정용 게임기 위(Wii)가 인기를 끌면서 최근 대학가에는 위 전용 카페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3월 29일 일요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서울 홍대앞의 한 위 전용 카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 카페는 따로 전화 예약이 안돼 주말이면 2~3시간을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위 카페는 1인당 5000~6000원을 내면 음료수와 함께 위를 한 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다.

이 카페를 찾은 김진선(21ㆍ서울 목동)씨는 "TV광고를 보니 쉽고 재밌을 것 같아 친구들과 함께 찾아왔다"며 "해보니 너무 재밌어 두 시간이나 했다"고 말했다. 이 카페 운영자인 김종회씨는 "사람들이 블로그나 입소문을 통해 알고 많이 찾아온다"며 "카페를 찾는 연령층도 다양해 어린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오거나, 30대 이상 어른들끼리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위 카페에서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게임은 'Wii 스포츠' '마리오와 소닉 베이징 올림픽' 등. 두 개의 스틱을 이용해 화면을 보며 야구, 볼링, 골프, 탁구, 육상, 펜싱 등을 즐길 수 있다. 실제 동작을 흉내내야 하기 때문에 시합을 벌이면 운동도 되고 재미도 있다는 평이다.   

현재 위 카페는 홍익대나 건국대 주변 등 대학가 중심으로 생겨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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