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Obama) 미국 대통령의 공식 소개를 받은 새 보건장관 지명자 캐슬린 시벨리우스(Sebelius)는 지명 소감을 말할 차례가 됐는데도 한동안 방송 카메라 앞에서 머뭇거리는 실수를 범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텔레프롬프터(연설 원고를 보여주는 투명 모니터)'가 그의 소개말이 끝나자마자 자동으로 내려가더니 마룻바닥 아래로 사라지는 광경에 놀랐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웃으면서 "신경 쓰지 마라"라고 격려했고, 시벨리우스는 "저게 사라지네요"라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연설의 달인'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이 짤막한 소개말까지 '텔레프롬프터'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6일 "오바마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텔레프롬프터'를 가장 즐겨 사용하는 대통령"이라고 보도했다.

오바마가 가는 곳이면 어디나 텔레프롬프터가 따라다닌다. 최근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내무부 직원들 앞에서 "열한살 때 국립공원에서 뛰놀던 기억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할 때도 그는 텔레프롬프터의 원고를 읽고 있었다.

5일 백악관에서 열린 보건개혁 관련 포럼에서 연설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앞에 연설문의 원고를 자막으로 비춰주는‘텔레프롬프터’(오른쪽의 투명한 사각판)가 놓였다. 뉴욕타임스는“역대 미 대통령 중 오바마처럼 거의 매일 텔레프롬프터를 사용하는 대통령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사진 기자와 방송 카메라맨들은 이 기계를 피해 오바마의 얼굴을 촬영하기가 까다롭다고 불평한다. 오바마가 텔레프롬프터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신의 말을 엄격히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즉흥 연설을 할 경우에는 자칫 전달하려던 메시지에서 벗어나거나 불필요한 말실수를 할 가능성이 큰데 오바마는 이를 매우 꺼린다는 것.

그러나 텔레프롬프터의 고장으로 큰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2002년 유엔(UN) 연설 도중 텔레프롬프터가 작동하지 않아 즉흥 연설을 해야 했다. 그런데 "무력 행동에 앞서 유엔 결의(resolution)를 구하겠다"는 말을 하려다가 "유엔의 결의들(resolutions)을 구하겠다"고 말하는 실수를 했다. 유럽국들은 이후 "부시 대통령이 유엔의 결의를 두 차례 이상 거친 뒤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던 스스로의 약속을 어겼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