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변호사회가 29일 서울지역 판사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법관 평가결과를 대법원에 전달했다. 평가는 변호사들이 자기가 평가하고 싶은 법관을 골라 '자질과 품위' '공정성' '사건 처리 태도'의 항목별로 'A'(매우 좋다)에서 'E'(매우 나쁘다)까지 등급을 매기면서 그 이유를 적도록 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서울변호사회는 5명 이상 변호사가 평가 대상으로 꼽은 47명을 골라 그 중 좋은 평을 받은 '우수 법관' 10명과 나쁜 평가를 받은 '문제 법관' 10명의 명단과 평가 내용을 대법원에 전달했다.
변호사들이 문제 법관으로 꼽은 사람 중엔 재판 당사자에게 고압적인 태도로 반말을 하거나 변호사에게 "어디서 그 따위로 배웠느냐"는 식의 인격 모독을 한 판사들이 있었다. 사건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정 구속을 할 듯한 태도를 보이며 합의나 자백을 강요했다는 경우도 있었고, 변호인 발언을 막거나 증인 신청을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등 편파적인 재판 진행을 했다는 판사도 있었다.
재판의 한 당사자인 변호사가 법관을 평가한다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우선 이번 평가에 참여한 변호사가 서울변호사회 전체 회원 6300명의 7.7%인 491명밖에 안 됐다. 특정 법관이 다룬 재판에서 진 변호사 몇 명이 담합해 그 법관을 망신주거나 학연·지연 같은 것을 따져 어떤 법관에게 좋은 평가를 몰아줄 가능성도 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헌법 103조) 재판에 임해야 한다. 법관이 변호사 눈치를 보거나 변호사들 인기나 얻으려 하면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그러나 변호사들의 법관 평가가 신뢰성만 확보된다면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법관은 재판 당사자들의 신체적 자유와 재산을 다루는 막중한 업무를 맡고 있는 만큼 일상적인 사무 처리로서가 아니라 자기 명예의 전부를 걸고 재판에 임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재판에서 법관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게 되는 게 변호사다. 변호사들의 공정한 평가가 축적돼 어떤 법관을 그가 거쳐온 경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주관한 재판의 판결 내용과 재판 진행의 성실성을 갖고 평가할 수 있는 '법관 이력서(履歷書)'가 만들어진다면 재판의 질(質)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공정한 법관 평가가 가능하려면 더 많은 변호사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밝히면서 평가를 하고, 변호사회가 그 평가 내용에 대해 충분한 사실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