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이저가 1977 년 디자인한‘아이 러브뉴욕(I Love New York)’로고 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1967년 밥 딜런의 포스터.

르네상스 시기 제도공들은 '디세뇨'(disegno)라는 일을 했다. 당시 뛰어난 제도공이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디세뇨를 '머릿속 생각을 시각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으로 해석했다. 이 말이 16세기 영어권으로 넘어와 오늘날 우리가 쓰는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됐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요즘 한국에선 마치 '첨단', '세련'을 상징하는 대명사처럼 쓰인다.

디자인에 쏠린 관심에 비해 관련 서적은 턱없이 부족한 국내 상황에서 이 책의 존재는 반갑다. 디자인의 역사와 디자이너, 디자인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촘촘히 엮은 디자인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두 저자의 이름 자체가 책의 공신력을 입증하는 보증 수표다. 《더 타임스》 《옵저버》 등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인·미술 비평가 스티븐 베일리(Bayley)와 영국의 '국민 디자이너'로 불리는 테렌스 콘란(Conran)이 손잡고 이론과 실재를 고루 안배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8장은 시대순으로 디자인사를 요약했고, 뒤는 알파벳순으로 디자이너와 회사, 제품을 나열했다. "좋은 디자인이란 98퍼센트의 상식과 2퍼센트의 신비한 요소, 즉 우리가 흔히 예술 또는 미학이라고 지칭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콘란의 잣대에 따라 실용적이면서도 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 수백 개가 소개됐다.

부제 '클립에서 구글까지'의 클립은 '일상의 디자인'을 대표한다. 노르웨이 특허사무원이었던 요한 볼레르가 디자인한 클립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나치 지배하에서 민족 단결을 상징하기 위해 옷깃에 꽂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식별하기 쉽게 만든 코카콜라 병, 여성과 성직자들이 정숙함을 지킬 수 있도록 발을 얌전히 올려둘 수 있게 고안한 스쿠터 '베스파'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복하다.

문자의 압박에서 벗어나 '디자인 사진첩' 사이에서 여유롭게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