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총신대역 근처 8차선 대로변에 위치한 공유지(서초구 방배 2동)는 사단법인 A연합회가 컨테이너박스로 사무실을 만들고 무단 사용 중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체 관계자는 "평당 6000만~7000만원은 되는 알짜배기 땅을 저렇게 놀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주변 가구업체 관계자는 "몇 년 전 해당 부지를 매입하려고 알아봤을 땐 팔지 않는 땅이라고 하더니 무단 사용 중인지 몰랐다"고 전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아파트단지 맞은편에 위치한 170㎡ 규모의 시가 2억6000만원 부지도 국가 소유 토지다. 하지만 B교회가 예배당을 지어 수십 년째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인근 건설사와 조선업체도 국유지 일부를 무단 사용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작년 초에야 이 교회와 업체들에게 변상금 통지서를 보냈다.

서울 서초구 재활용센터 인근 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50㎡ 정도의 공유지엔 회색의 긴 컨테이너가 하나 있고, 'C연합회'라고 쓰인 파란색 플래카드가 크게 걸려 있다. 마당으로 보이는 곳에는 닭 대여섯 마리가 돌아다니고, 컨테이너 문을 열자 사무실 한쪽에 일회성 버너와 식자재가 널려 있었다.

(왼쪽)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국유지에는 교회가 예배당<점선>을 짓고 무단 사용하고 있다. 맞은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조차 무단 점유 사실을 몰랐다고 전했다. (가운데)서울 마포구 서강대 근처 국유지에는 36㎡규모의 무허가 주택이 들어서 있다. 강인재 전북대 교수는“저소득 무단점유자에 대해서는 경제력에 맞는 임차료를 납부하도록 하는 관리 방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오른쪽)서울 중구의 한 재래시장에서는 1960년대 초반부터 국유지 무단점거가 시 작됐다. 캠코 관계자는“일부 상인들은 그동안 국유지를 사용한 데 대한 사 용료도 안 내고 향후 임대차 계약도 안 하면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자신을 관리인이라고 소개한 60대 중반의 문모씨는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사무실을 관리한다"고 했다.

이 단체는 5년 전부터 공유지를 허가도 없이 무단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녹지로 분류돼 있지만, 나무를 벤 뒤 마당과 인근 도로와 연결된 나무 출입문까지 만들어놓았다.

서초구에 별도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연합회 측은 "장애인을 위한 사무실이 추가로 필요한데 구청에서 마련해주지 않아 공유지인 줄 알면서 건물을 세웠다"며 "구청에서 사무실을 준다면 철거하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시위용으로 공유지를 5년째 점유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서초구청은 수년째 이 사실을 전혀 모르다 지난 8월 인근 주민의 신고가 이어지자 그제서야 계고장을 보냈다. 그러나 세 차례에 걸친 철거 요구에도 불구하고 C연합회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의 허술한 관리 탓에 알짜배기 나라 땅들이 수년~수십 년째 '주인 없는 땅'처럼 사용돼 왔다.

◆국유지를 자기 땅처럼 임대하고 사고 팔아

한술 더 떠 국유지를 자기 소유처럼 임대를 하거나, 사고 팔기도 한다.

서울시 중구의 한 재래시장 안에 있는 8개의 상가(43.5㎡)는 국유지이지만, 수십 년째 건물주가 상인들에게 임대를 놓고 임대료를 받아오고 있다. 월 60만원씩 임차료를 내며 10년째 피복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여사장은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건물주와 정식 임대 계약을 맺었고 이 땅이 무단 점유된 곳인지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이 시장 관리소 관계자는 "일부 건물주들의 경우 국유지를 20~30년간 공짜로 썼는데, 왜 지금 와서 국가와 토지 임대 계약을 맺어야 하느냐며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국유 재산 매각 업무를 담당하던 전직 공무원 D씨는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중반에 걸쳐 전남 신안군, 목포시 등에 여의도 면적의 19배에 해당하는 국유지 157㎢를 불법 취득했다. 그는 친인척 이름을 빌리거나 서류를 위조하는 방법으로 취득하다가 적발됐다. 그는 일부 토지를 제3자에게 매각하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다.

경기도 화성시청 관계자는 "국유지를 무작정 무단 점거 후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도 많아 소송 업무만 다루기에도 벅찬 상태"라고 말했다. 국유지 관련 소송 건수는 2007년 한 해 동안에만 2840건에 이른다.

수십 년째 '나대지'로 방치된 행정재산

국가 기관 스스로 법을 어기며 국유지를 불법 이용하거나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현행 국유재산법상 각 부처들이 소유하고 있는 '행정재산'의 경우 5년 이내 사용하지 않을 경우 용도 폐지해 국유재산 총괄부처인 기획재정부로 넘기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법을 어기며 나대지 등으로 장기간 방치하는 부처도 있다.

옛 해양수산부(국토해양부)는 지난 2001년 강원도 동해안에 항만 물류단지로 사용하겠다며 토지공사로부터 7만5850㎡의 국유지(시가 45억원 상당)를 받았지만, 7년째 나대지로 방치하고 있다. 항만 관리 규정 등 해당 법규도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토지를 확보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1983~1991년 항공우주박물관을 설립할 목적으로 여의도 대방역 근처에 3306㎡ 규모의 노른자 땅을 취득했다. 그러나 취득 목적과 달리 1991년부터 100여명의 회원을 둔 테니스장으로 사용 중이다. 자산관리공사는 이 땅에 민관 복합건물을 개발해 임대할 경우 600억원대에 이르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그런데도 공시지가 200억원이 넘는 땅을 17년째 놀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로 넘어갈 경우 다음에 다시 필요한 땅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쓰지도 않으면서 해당 부처가 움켜쥐고 있다 보니 장기간 방치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국유지·공유지 

국유지란 정부 부처가 사용 또는 관리하고 있는 토지로 전국 토지의 23.5%인 2만3460㎢에 이른다. 공유지는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가 사용하거나 관리하는 토지로, 7048㎢(7.4%) 규모다. 국유지는 기획재정부, 공유지는 행정안전부가 각각 총괄 관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