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로서 슬프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김민기(58)가 다시 만들 '지하철 1호선' 21세기 버전이 궁금하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번안·연출 김민기)이 31일 장장 15년에 걸친 4000회 공연(국내 최장기공연 기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독일에서 초청된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Ludwig·71)는 "1986년 베를린에서 초연된 '지하철 1호선'(원제 Linie 1)은 1400회 돌파를 앞두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4000회를 달렸으니 경이로운 일"이라며 "서울의 변화된 상황에 맞게 새 작품을 만들겠다는 김민기에게 동지애와 함께 질투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루드비히가 이끄는 독일 그립스 극장의 '지하철 1호선'은 베를린에서 한 달에 5번쯤 공연되고 있다. 김민기가 한국화한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국내 초연됐다. "21세기에 바뀐 서울 풍경을 담기 위해 새 버전이 필요하다"는 김민기의 생각과 달리 루드비히의 '지하철 1호선'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1986년 베를린'이 배경이었다.
"화폐가 마르크에서 유로로 바뀐 것과 물가 상승 등을 반영하다가 2005년부터는 아예 통일 전의 베를린으로 정지시켰다. 통일 이후 변한 베를린의 모습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김민기는 "나도 '지하철 1호선'을 1998년 서울의 풍속화로 남기고 싶었지만 숭례문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는 과거의 풍경화란 없구나'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르면 2010년 초연될 새 버전은 지하철 1호선이라는 공간, 이방인의 눈으로 본 서울이라는 설정만 남고 다 달라진다. 김민기는 "지금 우리의 절망은 무엇이고 희망은 무엇이냐는 시각은 들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루드비히가 이 말을 받았다.
"한국의 '지하철 1호선'은 밝은 장면과 어두운 장면이 맞붙는 대목이 많아 재미있었다. 2007년 김민기가 독일에서 괴테메달(문화훈장)을 받을 때 내가 낭독한 공적서에도 들어 있었는데, 그립스 극장이 희망을 주로 이야기한다면 김민기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천재적이다."
김민기는 "15년을 이 뮤지컬에 매달려 있었지만 새해부터 극단 학전의 큰 그림은 어린이청소년연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동화나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처럼 우리 아이들의 고민과 절망을 담은 작품들을 구상 중이다. 루드비히가 "아동극을 많이 하면 아주 가난해진다. 그립스 극장은 아동극을 올리는 대신 공공기금을 지원받는다"고 하자 김민기는 "길이 안 보이니까 만들어서 가는 식으로 오기 부리는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루드비히는 "연극은 세상을 진동시키는 예술이다. 당신의 풍자 정신이 새 작품에도 담기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