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공사도 시작되지 않은 '계획상의 전철 노선' 때문에 서울 용산에서 벌써 잡음이 일고 있다. 지난 19일 포스코건설이 강남역과 경복궁을 잇는 11.47㎞의 민자 지하철을 2015년 완공목표로 서울시에 제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용산구가 "이 노선의 신설로 우리가 피해를 입을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하위 단체인 구청이 시를 상대로 경고성 입장을 천명한 것은 희귀한 사례다. 용산구는 해당 노선이 확정될 경우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했던 '강남~용산 전철 노선' 계획이 무산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용산구 "지역발전 저해" 위기감
용산구는 28일 성명을 내고 "강남에서 경복궁 방향으로 연결하는 지하철 건설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광역 교통망 체계와 용산 지역의 발전에 저해된다"고 밝혔다. 용산구는 "이미 강남역에서 용산역을 잇는 전철 노선이 국토해양부의 수도권 광역교통기본계획으로 수립돼 있는 상황에서, 기업 제안 아이디어에 서울시가 관심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포스코건설의 제안 사실이 알려진 뒤 지역사회가 큰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용산구가 말한 '강남~용산' 노선이란 2002년 수도권광역기본계획의 일환으로 수립된 신분당선 연장구간을 말한다. 2010년 개통 예정인 신분당선(분당 정자~강남역)을 북쪽으로 더 연장해 강북으로 연결시킨다는 구상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신분당선 연장구간은 강남역에서 북쪽으로 논현~신사~동빙고~국립박물관을 거쳐서 용산역으로 이어지는 8.1㎞ 구간으로, 이르면 2017년쯤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이 노선은 기존의 신분당선처럼 민간투자로 진행되며 현재 공공투자관리센터에서 투자 적격 심사 중이다. 투자 타당성 부문에서는 합격점을 받았으나 승객 수는 예상보다 다소 적을 것으로 추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구는 신분당선 연장구간이 강남권과의 빠른 연결에 힘입어 낙후된 지역 발전을 크게 앞당겨 줄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해왔다. 서울시와 코레일이 용산역사 철도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 56만6000㎡에 2016년 말 완공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용산국제업무지구의 활성화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재문 용산구 도시계획팀장은 "용산~문산 경의선 복선 전철까지 개통되면, 용산은 서울과 강남·일산·파주를 동시에 이어주는 교통 축으로 떠오를 참이었다"며 "국제업무지구에 들어설 컨벤션센터, 호텔, 국제여객선터미널 등이 완공 후 빨리 자리잡으려면 강남과 용산을 직접 연결해주는 노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용산구는 "서울시가 기존의 강남~용산 구간을 강남~경복궁으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즉시 구 차원의 대규모 반대집회나 소송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승객 수요 등 신중히 따져보고 결정"
국토해양부는 일단 포스코건설의 제안 노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국토해양부 박일하 주무관은 "철도망이라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상위 계획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갑자기 민간제안이 왔다고 해서 쉽게 반영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게다가 이번 제안 노선은 사실상 지하철 3호선의 강남~도심권 구간과 겹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용산구가 아직 확정도 되지 않은 노선을 가지고 너무 성급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한편으로 포스코건설 제안 노선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두 노선은 모두 민자추진사업이지만, '강남~용산' 노선은 국토해양부가 계획·관리하는 '광역전철'이고, '강남~경복궁' 노선은 서울시가 계획·관리 주체인 '도시철도'로 제안됐다. 따라서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여지도 적지 않은 셈이다.
서울시는 "지금으로서는 어느 노선이 더 좋다고 판단하기 힘들다"며 "타당성 조사 용역을 의뢰한 뒤 신중하게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준병 서울시 교통기획관은 "승객 수요와 교통 편의성 등을 따져보고 결정할 것이지만, 꼭 두 노선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닌 대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강남에서 출발하되 분기점을 정해 '용산'행과 '경복궁'행으로 나뉘게 하는 Y자형 노선으로 국토해양부에 건의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새 노선도 확보하는 동시에 용산구의 불만도 잠재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용산구는 "기본적으로는 찬성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로는 투자 적격 심사를 통과하기도 힘들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강남역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새 민자 전철 노선의 윤곽은 투자 적격 심사 등이 모두 끝나는 내년 6월쯤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