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가장 추웠다는 지난 12월 6일 오후. 기온은 영하 13도까지 뚝 떨어졌다. 두툼한 외투에 목도리를 감아도 양쪽 볼이 덜덜 떨리는 날씨였지만 강남역 일대는 여느 때처럼 붐볐다. 젊은이들이 주로 약속장소로 잡는 한 옷가게의 건너편 건물 모퉁이에 예닐곱 명이 모여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플라스틱 의자도 네댓 개 준비돼 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이나 서서 기다리는 사람 모두 오들오들 떨면서 순서를 기다리는 곳은 타로카드로 점을 보는 포장마차였다.

팔짱을 낀 채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은 여성 두 명에게 다가가 춥지 않느냐고 물었다.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 대답이 없다. 얼마나 용하기에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떨고 있는지 궁금했다. "점이 잘 맞나 봐요?"라고 묻자, 피식 웃으며 "그냥 재미로 보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키가 170㎝ 정도 되는 여성이었다.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또 다른 여성은 "오늘은 그래도 사람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거들었다. 날씨가 좀 따뜻했던 어느 주말에는 2시간 정도 기다렸다는 것이다. 기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10m 정도 떨어진 횡단보도를 턱으로 가리키며 "조~기 앞까지 줄 서서 기다렸다니까요"라며 입을 삐죽거렸다.   

서울 종로, 신촌, 강남등 변화가 일대에서 '사주포차'가 성업 중이다.

 신촌·강남역 인근 ‘사주·궁합’ 포장마차 성업
 “철학관은 비싸고… 부담 없이 재미로 보는 거죠”

서울 시내 번화가를 걷다 보면 '사주포차'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사주포차는 '사주를 보는 포장마차'의 준말. 3000~5000원을 내고 10~15분간 사주·관상·궁합 등을 보거나 타로카드로 점을 보는 곳을 통틀어 사주포차라고 부른다. 3~4년 전부터 하나둘씩 생겨난 이들 사주포차는 특히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며 빠르게 퍼지고 있다.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강남역 방향으로 난 대로변에는 사주포차 대여섯 곳이 영업하고 있다. 종로통에서 가장 번화한 '피아노 거리' 한가운데 역시 사주포차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특히 대학가가 몰려 있는 신촌은 사주포차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신촌역에서 이대 방향으로 이어진 '명물거리'에는 200m 남짓한 길가에 사주포차만 7곳이 영업 중이다.

지난 12월 5일 오후. 신촌의 한 사주포차에서 점을 보고 나오는 듯한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다짜고짜 말을 거는 기자에게 경계하는 표정을 짓던 그는 신촌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친구를 기다리다가 심심해서 사주포차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박모(여·26)씨에게 왜 하필 사주포차냐고 묻자 "싸니까"라는 대답이 곧바로 튀어나온다.

"3000원이면 커피 한 잔 값인데, 싸잖아요. 지금 대학원 다니긴 하는데 내년에 취업해야 돼서 불안하기도 하고요. 점집이나 철학관 같은 곳이 잘 맞힐 것 같긴 한데, 왠지 부담돼요. 방울 딸랑딸랑 흔드는 무당집에 가는 건 무섭고요. 그리고 그런 데는 기본 5만원은 줘야 할 걸요? 사주카페도 있긴 한데 거기는 커피값 따로, 복비 따로 내야 하더라고요."   

취업운은 잘 나왔냐고 묻자 “내년에 취업이 잘된다고 하더라”면서 “그래도 뭐 때가 돼봐야 아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믿지도 않을 사주를 도대체 왜 본 걸까. 친구들과 몇 번 사주포차에 와봤다는 박씨는 “그냥 딱 3000원어치만큼 위안이 된다”고 했다. 그는 “100% 믿을 수는 없지만 좋은 말 들으면 기분 전환이 되기 때문에 오는 것 같다”면서 “점 보는 사람들이 뭘 알고 말하는 건지, 눈치 봐서 대충 찍는 것인지 의심이 된다”고 했다. 그는 “점이 안 맞는다고 해서 AS를 해주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웃었다.

“철학관 차릴 돈은 없고… 역술 배워 시작했지”
 11~12월 비수기 불구 취업 상담 젊은층 줄이어

박씨가 점을 봤다는 사주포차에 들어갔다. 40대 중반의 여성 역술인이 앉아있었다. 포장마차 안은 역술인과 손님 두 명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작았다. 손님 자리의 오른편에는 키 165㎝인 여성도 드나들기 어려울 만큼 좁은 출입구가, 왼편에는 어른 손 두 뼘 높이 정도 되는 창문이 달려있었다. 역술인의 옆에는 책 서너 권과 DMB를 볼 수 있도록 세워둔 휴대폰, 명함과 펜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철학관 할 형편이 되면 이런 거 하나요? 몇 년 전에 이거(사주포차) 하려고 역술을 배웠어요. 나는 철학관은 못해봤고, 이거부터 시작했죠. 대부분 젊은 애들이 많이 오고…. 남녀가 같이 오면 애정운, 여자끼리 오면 진로에 대해 제일 많이 물어보지 뭐. 열에 아홉은 여자손님인데 요즘에는 남자끼리도 많이 오더라고요."

두꺼운 점퍼를 입고 팔짱을 낀 채 답하는 그는 "원래 11·12월은 비수기지만 취업 때문에 고민하는 손님들이 자주 온다"면서 "이제 곧 신년운 보러 또 많이 올 것"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현금장사'를 하는 사주포차 주인들은 과연 얼마나 벌고, 어떻게 운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운영이나 수입에 대해서 "장사가 돼야 말이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주 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 대충 눈치로 찍는 것 아니냐"고 떠보자 발끈하며 "그러면 손님들이 바로 알아볼 것 아니냐"며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술인과 인사를 하고 좁은 문을 나오니 바로 옆 사주포차에 남자 손님 두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까만 뿔테를 쓴 남성이 "같이 대학 졸업한 친구인데, 오랜만에 술 한잔 하려고 만났다"고 말했다. 기자가 "사주 보려고 기다리느냐"고 묻자, 회색 코트를 입은 남성은 "직장생활 한 지 2년 정도 됐는데 언제 이직하면 좋을지 물어보려고 왔다"고 했다.

"남들은 요즘 같은 때 회사 다니는 게 어디냐고 하는데, 요즘 진짜 회사 분위기 장난 아니거든요. 얼마 전에 무급 휴가 쓸 사람 신청하라더니 오늘은 희망 퇴직자까지 모으더군요. 이 정도 되면 거의 나가라는 거지요 뭐. 다들 술렁술렁 해요. 이직 얘기도 많이 나오고…. 그런데 요즘은 이직도 쉽지 않대요. 워낙 경쟁자가 많아서."

“회사 분위기 안 좋아 이직 운 있나 물으려고”
“난 금전운 없다네… 괜히 기분만 나빠졌어”

옆에서 듣고 있던 남성은 뿔테안경을 손으로 밀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저는 얘보다 좀 심각해요. 내년 5월에 결혼하려고 식장까지 다 잡아놨는데, 펀드로 날려서 통장에 돈이 없어요. 금전운 좀 보려고요. 언제까지 이렇게 바닥을 칠 건지. 속 시원히 물어볼 데가 있어야 말이죠. 남자가 이런데 와서 점 본다고 하면 욕하겠지만 어쩌겠어요. 쪽 팔리긴 해도 답답해서 미치는 것보다 낫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사주포차 안에서 손님 한 명이 나와 3000원을 내고 사라졌다. 이들은 재빨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고민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나 "내가 낼게" "아냐, 내가 낸다니까 임마" 하는 소리가 들렸다.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1만원을 내고 4000원을 거슬러 받고 있었다. 표정이 밝아 보인다고 하자 "내년에 회사 옮길 수 있대요"라며 싱긋 웃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걸 진짜 믿냐"라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금전운은 어땠냐"는 물음에 그는 대답 없이 구둣발로 뱉은 침을 뭉개고 서있었다. "아, XX. 결혼을 안 할 수도 없고, 내가 사주에 금전운이 없으니까 이 모양이지. 괜히 봤다, 젠장." 그는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친구는 ‘해외 가면 잘된다’ 말 듣고 유학
 역술인 말에 울고 웃고…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잠시 후 2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사주포차로 다가왔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했다는 그들은 "술기운이 올랐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빨간 점퍼를 입은 노모(여·21)씨는 갈색 코트를 입은 여성에게 '언니'라고 불렀다.

"이 언니가 여기 잘 맞힌다고 해서 왔어요. 아저씨(역술인)가 취직 잘 될 거라고 했는데, 진짜 합격했대요. 저는 아직 (대학교) 3학년이긴 한데, 애들이랑 만나면 취직 얘기밖에 안 해요. IMF 때보다 취직이 더 안 될 거라고 하니까…. 어디에 취직하면 좋을지 물어보려고요. 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아니고요."

듣고 있던 '언니'가 말을 잘랐다. "저도 여기 친구가 소개해줘서 처음 왔어요. 걔가 진짜 스펙이 좋았는데 취직이 안 됐거든요? 계속 물먹고 맘고생 엄청 심하게 했는데, 이 아저씨가 유학을 가라고 했대요. 해외로 돌아다닐 운이라고. 근데 걔가 그 말 듣고 진짜 한 달 만에 외국 갔어요. 빚내서라도 간다고, 무조건 가더라고요. 외국에 나가서 맘이 편해진 건지, 진짜 이 아저씨 말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은 만족한대요." 

대학 3학년이라는 노씨에게 "왜 사주나 타로카드처럼 과학적이지 않은 방법을 믿느냐"고 묻자 잠시 '음~' 소리를 내며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 잠도 안 올 만큼 불안한데 물어볼 사람이 없어요. 잘된다고, 힘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요. 물론 사주 보는 아저씨가 '잘 안 된다'고 하면 충격이 크죠. '3000원 버렸다' 정도가 아니라 진짜 신경 쓰여요. 더 불안해질 때도 있고요. 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우리 진짜 불쌍하다. 저 사람(역술인) 하는 말에 울고 웃고….' 그런데요, 오죽하면 이러겠어요. 오죽하면."

| ‘타로텔러’ 모집하는 곳 가봤더니… |

10분 면접 후 "내일 당장 출근… 10시간만 배우면 영업 가능"
"눈치가 생명… 적당하게 손님 말에 맞장구만 쳐주면 그만"

서울 은평구의 한 사주포차. 이곳 유리창에 '초보자 환영! 타로텔러(trot teller·타로카드로 점을 봐주는 사람) 모집'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손님 세 명이 타로텔러들과 마주보고 앉을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서 오세요"라며 가운데 앉은 여성이 인사했다. "면접 보러 왔다"는 말에 맨 오른쪽 의자에 앉으라고 가리켰다. 그 앞에는 사장으로 보이는 듯한 여성이 앉아있었다. 기자는 "타로카드에 관심이 많다"고 소개하며 "점을 전혀 볼 줄 모르는데도 타로텔러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잠깐 동안 얼굴을 쳐다보던 사장이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더 묻지도 않은 채 곧이어 타로카드를 꺼냈다. 사장은 오른손에 쥔 타로카드를 나무 탁자에 탁탁 치며 말을 이어갔다.

"타로카드 점을 잘 볼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볼 거예요. 마음속으로 한 가지 생각만 하세요. '타로텔러가 되고 싶다'는 생각. 양손 중에 평소에 안 쓰는 손으로 카드 일곱 장을 뽑으세요. 하나·둘·셋… 일곱. 자 됐어요. 어디 볼까요? 음…. 화술이 뛰어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라 타로텔러 하기에 좋겠군요."

면접은 이런 식으로 타로카드 점을 풀면서 10분 정도 진행됐다. "성격은 이만하면 됐다"고 결론 내린 사장은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면서 말을 꺼냈다.

"타로카드에 관심 있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한테 배워서 장사 하려는 사람도 많고. 그런데 우리는 식구처럼 일할 사람을 원해요. 사실 점을 봐주는 거지만 우리는 남의 고민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사람들이에요. 미래를 맞히는 것보다 중요한 건, 마음을 털어놓게 만들어서 그 손님이 또 찾아오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영업이 중요하다는 거죠. 영업 마인드가 없으면 이 일 못해요."

"영업은 자신 있다"면서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물건을 잘 팔아 칭찬을 받았었다"고 증거를 대자 사장은 이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타로카드 교육은 5일 동안 매일 2시간씩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고작 10시간 배워서 남의 미래를 점칠 수 있을까. 어리둥절해 하는 기자를 보면서 사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타로카드마다 숫자가 있다고 칩시다. 일, 이, 삼, 사…. 이걸 손님한테 그대로 말하면 안 되고, 스스로 덧셈·뺄셈·곱셈·나눗셈 하는 거예요. 눈치 봐서 손님이 원하는 답으로 만들어 주는 거죠. 이게 기술이에요. 처음에는 잘못 '계산'해서 답을 못 맞힐 수도 있는데 하다 보면 늘어요. 정답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럴 듯하게 말하면 돼요. 어쨌든 타로텔러는 눈치가 생명이에요."

한참 영업을 가르치던 사장이 돈 얘기를 꺼냈다. "한 가지 질문에 답해 줄 때마다 손님한테 3000원을 받는다"면서 "그중 40%가 당신 몫"이라고 했다. 기본급은 없고 철저히 성과급이라는 것. 한 달에 얼마나 벌 수 있느냐는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는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사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배우는 과정이니까 목돈은 못 만질 거예요. 타로카드 학원도 있는 거 아시죠? 우리가 공짜로 가르쳐 주는 거니까 첫 달은 돈 벌 생각 하지 마시고. 몇 달 전에 우리 가게 있던 언니는 한 달에 300(만원) 벌어갔어요. 현금 장사라서 쏠쏠하죠. 자기도 열심히 하면 된다니까. 우리는 고정 손님을 만들어야 돈이 되니까 손님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내일부터 교육을 시작하겠다는 사장의 말에 "내일 다시 오겠다"고 인사하자 그는 기자를 황급히 불러 세웠다. 사장은 "우리 가게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절대 배운 내용을 네이버나 다음 카페 같은 데 올리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면서 "어렵게 배운 기술을 남한테 공짜로 줘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는 "사업을 계속 확장해 나갈 거니까 잘해보자"면서 "우리는 전문직"이라고 강조하며 명함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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