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국립공원이자 수도권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산 북한산. 이 명산(名山)의 이름 문제로, 산자락을 공유한 서울 강북구와 경기도 고양시가 격렬히 맞서고 있다. 강북구는 "역사적 정통성이 있는 '삼각산'으로 산 이름을 바꿔야 한다"며 5년째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는 반면, 고양시는 "잘못된 사실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강북구 "북한산 명칭은 일제 잔재"

강북구(구청장 김현풍)는 삼각산으로의 개명 캠페인을 2003년부터 구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고, 관내에서는 '삼각산'을 공식 명칭으로 쓰고 있다. 강북구는 2004년 3월 서울시 지명위원회에 명칭 변경 안을 상정했으나 논란 끝에 보류되자, 그해 5월부터 '삼각산 제 이름 찾기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지난달엔 지역 주민·종교인 대표 등으로 구성된 '삼각산 제 이름 찾기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 중 가장 높이 우뚝 솟은 백운대(왼쪽)와 인수봉의 모습. 조선일보DB

1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는 '삼각산 제 이름 찾기 학술세미나'도 열었다. 송석구 가천의대 총장은 "삼각산이라는 용어를 잃게 된 근원에는 이마니시 류(今西龍) 경성제대 교수가 있다"며 "그가 1916년 '북한산 유적보고서'를 제출한 뒤 총독부 문서에 북한산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홍윤식 일본 규슈대 특임교수는 "삼각산은 고려 이후 줄곧 통용됐고, 북한산은 조선 숙종 때 북한산성을 쌓은 뒤 간혹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숭례문을 남대문이라 부른 것처럼 북한산은 방위적·영토적 개념에 불과해 정식 산 명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정룡 서울역사문화포럼 회장은 "삼각산은 백운봉·인수봉·국망봉의 세 봉우리가 삼각 모양으로 뾰족하게 서 있다 해서 1000년 가까이 불려 온 정통성 있는 이름이고, 북한산은 백제 건국 후 '한강 이북 한산(漢山)지역'이라는 의미의 지역 명칭에 국한된다"며 "역사적 배경을 무시한 채 1983년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이름 붙인 뒤 지금까지 북한산으로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강북구는 "다양한 세미나·캠페인으로 범국민적 홍보운동을 펼치고 서울시 지명위원회에 재상정해 명칭 변화를 이끌어낸 뒤, 국토해양부 중앙지명위원회에 올려 정식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고양시 "강북구 역사 왜곡해 국민 호도"

고양시(시장 강현석)는 강북구의 개명 운동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시는 "북한산이 일제 잔재고 삼각산이 민족적 정통성을 갖췄다는 강북구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정동일 고양시문화재전문위원은 "조선 숙종 때 발간된 '북한지(北漢誌)'에 '북한산은 고구려 때부터 북한산군(北漢山郡)이라 불렸고, 백제 개루왕 때 북한산성을 쌓았다'고 기록돼 있다"며 "조선 숙종 41년(1715년)에 만들어진 '북한산성금위영이건기비'에도 북한산성이란 이름이 적혀 있는 등 '북한산' 명칭이 쓰였다는 기록은 고구려 시대부터 셀 수 없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시대부터 사용된 삼각산보다 북한산에 더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시는 '북한산'은 방위를 표시한 영토 명칭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반박한다. 정 위원은 "삼국사기에 '진흥왕이 북한산(北漢山)을 순행하여 강역을 획정했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는 북한산이 영토 명칭이 아니라 '산 이름'임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시는 역사적 타당성 없이 북한산 이름을 바꿔 많은 혼란을 감당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름을 바꾸면 사적(史蹟)으로 지정된 북한산성을 포함, '북한산성 행궁지' 같은 문화재 이름도 바꿔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북한산 전체를 봉우리 3개만을 일컫는 '삼각산'으로 바꾸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맞선다.

시는 강북구의 '의견 수렴 절차'에도 불만을 표하고 있다. 북한산은 여러 지방자치단체에 걸쳐 있는데도, 관련 시·군과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고양시는 "강북구는 2005년 명칭 변경에 대한 동의서를 한 차례 보낸 후 각종 토론회·심포지엄을 진행하면서 고양시를 초청하거나 의견을 들은 적이 없다"며 "다른 지자체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뒤 중앙 지명위원회에 정식으로 명칭 변경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