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조각가든’등 6개의 테마 조각공 원을 갖춘‘C아트뮤지엄’. 김건수 객원기자

조각가 정관모(鄭官謨·71)씨의 양평 집에 없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조각 작품이다. 흰색 벽지와 나무 바닥으로 깔끔하게 단장한 집 내부에는 조각은 물론, 그림 한 점 없다. 정씨는 "눈을 식히기 위해 집안에 들여놓지 않았다"고 했다.

전체 230㎡ 공간 가운데 작업실로 쓰는 곳은 8㎡ 남짓한 작은 방이다. 공부방 같은 분위기로, 한쪽 벽에는 책이 가지런히 꽂힌 서가가 있다. 맞은편 벽에 내걸린 120×120㎝ 캔버스와 아크릴 통이 이곳이 작업실임을 깨닫게 한다.

"수염 기르고 이리저리 어질러 놓아야 영감이 떠오르는 건 아니지요. 예술가는 운동 선수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일상 속에서 무한 반복되는 작업의 지겨움을 극복해 낼 줄 알아야 해요."

정관모씨가 조각공원 광장에 세운 높이 22.5m의 거대한 예수 얼굴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정관모씨는 2년 전부터 조각이 아닌 그림을 그리고 있다. "조각을 만지기에는 힘에 부친다"고 했다. 작은 방에서 유구한 기독교 역사를 도형과 상징물의 형태로 캔버스에 녹여내는 작업을 반복한다. 이렇게 완성한 140여점의 아크릴화는 절반은 전시실에 내걸고 절반은 자리가 부족해 창고에 쌓아뒀다. 70세가 넘은 미술계 원로(元老)는 여전히 자신을 가둔 공간을 훨씬 뛰어넘는 열정을 발산하고 있었다.

정씨는 작품으로 말하는 예술가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의 막대와 구(球)가 얽힌 스테인리스 작품 '코스모너지'를 포함, 삼성화재·롯데월드·주택은행·무역회관 등 20여개 유명 기업·관공서에 설치된 환경 조각이 그의 작품이다. 지난 2006년엔 20년 동안 운영해온 제주도 신천지미술관을 처분하고 양평 양동면에 'C아트뮤지엄'을 개관했다. 미술관 한편에 방 4칸짜리 주황색 벽돌집을 지어 서울 평창동 집을 오가며 작업을 한다.

C아트뮤지엄은 정씨가 평생의 노력을 집약해 세운 기독교 현대 미술관이다. 2개 전시관과 기념관, 강당·세미나실 등 건물 면적만 4000㎡에 이르고, 다양한 작가들의 조각 1300여 점과 그림 2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6만㎡ 땅에 '사실조각가든' '추상조각가든' '동물조각이 있는 언덕' '시가 있는 동산' 등 테마 조각공원만 6개이고 산책로, 삼림 보행로, 숲속의 기도방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C아트뮤지엄의 'C'는 'Contemporary'(현대) 'Creativity'(창조) 'Chung'(정관모)과 함께 'Christianity'(기독교)를 뜻한다.

미술관 뒤편엔 '골고다 언덕'이라 명명된 경사 30~40도의 시멘트길이 나 있다. 기독교를 주제로 한 '십자가의 숲 광장'으로 향하는 도로다. 탁 트인 광장 중앙에는 높이 22.5m의 거대한 예수 얼굴상이 세워져 있다. 정씨가 용접공 5명과 함께 1년을 작업해 만든 작품이다. 월계관을 쓴 주황색 코르텐 스틸 예수는 십자가 위의 고난을 끝낸 편안한 표정이다.

제주도의 명소이던 신천지미술관과 달리 C아트뮤지엄은 적자 운영되고 있다. 산 속에 있는 데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부지 매입과 공사 등에 총 85억원이 투입됐다. 소장 작품들의 가치를 합치면 400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정씨는 "건물 디자인과 작품 운반을 직접 해서 비용을 아꼈다"고 말했다.

정씨는 책과 신문, TV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접한다고 했다. "예술가라고 해서 작은 방에 틀어박혀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따금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기질이겠지만, 가능한 한 남들과 같은 일상 생활을 영위하며 평범함과 겸양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지요."

미술관 한편에는 같은 직업을 가진 부인 김혜원(67) 작가의 전시실도 있다. 정씨가 단순화된 형태의 상징 조각을 주로 만든다면, 김씨는 유려한 곡선을 통해 인체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작품 세계를 추구한다. 예술가 부부는 서로에 대해 종종 '신랄한 비판'을 한다고 했다. 그만큼 소중한 영감을 주고받는 행복한 부부다.

"세계관이 다른 두 사람이 충돌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답했다. "부부가 서로 같아서 사랑하는 걸까요. 아니면 다르기 때문에 사랑하는 걸까요.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허허."

정관모씨는

홍익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크랜부룩 아카데미오브아트에서 석사를, 일런대에서 명예박사를 받았다. 개인전을 29회 열고, 단체전엔 280여회 출품했다. 기독교를 주제로 한 기념비적인 형태의 작품을 추구한다. 미술협회 이사장, 예총 부회장, 성신여대 미대 학장을 지냈다. 관련상을 다수 수상하고, 지난 6월엔 제22회 김세중 조각상을 수상했다. 현재 성신여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