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짜리 꼬마가 "무게가 있는 두 물체는 서로 밀어내는 힘도 지닌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훌륭한 재롱에 즐거워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어느 누구도 꼬마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가 같은 말을 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물론 이제까지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을 하늘같이 떠받들던 물리학계는 노쇠한 물리학자의 정신이상을 의심하며 그 말을 무시하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중에 어떤 이들, 적어도 호킹 박사를 추종하는 과학자들은 그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나아가 그것으로 또 다른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할 것이다.
이 둘의 차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동일한 내용에 대해 어떤 사람의 말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의 말은 무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똑같은 말을 했을 때 이와 같은 차이가 벌어지는 것은 단순히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것을 참이라고 믿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고 할 수밖에…. 우리는 이것을 '권위'라고 부른다. 어떤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 받은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굉장한 설득력을 지닌다.
물론 그와 같은 권위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특정한 주제에 대해 권위를 인정 받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쌓아놓은 업적 덕분이다. 어떤 점술가가 용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나, 어떤 학자가 박사학위를 따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같은 이치로 이해할 수 있다. 점쟁이가 용하다는 말을 듣는 것 역시 한두 번의 성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술가의 예언과 학자들의 소견이 같은 값을 지닌다고 할 수는 없다. 점술가의 권위는 이를 믿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통용된다. 점술가들의 주장에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 뿐이다. 또 그 권위가 사회적으로 강한 힘을 갖는 것도 아니다. 반면 학자들의 권위는 다르다. 학자들의 이야기는 사회구성원들의 개인적인 믿음 여부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내가 학자들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권위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자의 주장에 대해서건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회적 권위가 힘을 잃지는 않는다.
그들의 권위를 해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들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공인된 권위를 지닌 사람이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었다고, 그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객관적인 권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객관적 권위부여 시스템을 만들었는지는 논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학자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회나 자연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나 느낌을 토해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간혹 이상적인 사회를 가리켜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지칭하곤 한다. 그렇다면 상식이란 것은 무엇일까? 상식은 그 특성상 '객관성'을 핵심적인 속성으로 갖는다. 객관성을 잃는다면 그것은 상식일 수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양심과 같은 인류 보편적인 성품도 상식을 구성하는 한 축이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교육 시스템과 거기서 부여한 학위 등의 객관적 권위로부터 도출된 학문적 성과도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상식'이 된다.
즉 사회나 자연에 대한 상식의 뿌리에는 권위 있는 사람들에 의한 연구와 이를 통해 얻어진 객관적 결과가 자리매김하고 있어야만 한다. 학문적 성과에 있어서 '상식'이란 결국 이와 같은 권위 있는 학계에서 통용되는 지식을 지칭한다. 따라서 학위를 받은 사람과 그러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연구한 결과에 특별한 권위를 인정하고 부여하는 행위는 곧 우리 사회가 상식 수준에서 움직일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
논리학에 나오는 수많은 논리적 오류 중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라는 것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합리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이 떠든 이야기를 아무런 의심도 없이 '참'으로 받아들여 저지르게 되는 오류가 바로 '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이다. 베이컨이 '극장의 우상'으로 표현한 것도 결국은 이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요즘 한참 교과서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행정수반인 대통령과 다수의 정치인들, 심지어는 국방부에서조차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교과서의 어떤 내용이 잘못됐느니 잘됐느니 자신들의 견해를 표명하는 데 여념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를 판가름하기에 합당한 권위를 그들이 지니고 있다는 소리를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다.
지금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교과서의 내용은 합당한, 우리 모두가 인정한 권위자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아니었던가? 혹시라도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싶다면 정식으로 공부하고 학위를 부여받은 다음 주장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상식을 지켜 주는 올바른 행동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