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백 여신금융협회 상근부회장

최근 신용카드 가맹점수수료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으로 신용카드 전표매입 회사제도의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전표매입 회사란 현재 국내 신용카드 거래 구조처럼 카드 발급사가 자사전표를 매입하는 형태가 아니라, 카드발급업무는 하지 않으면서 모든 카드발급사의 전표매입을 전담하는 회사를 말한다. 이는 현재 사업장(가맹점)에서 발생한 매출전표를 각 해당 카드사에만 접수시켜야 하기 때문에, 가맹점수수료 결정이 불합리하게 이루어져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가맹점들은 이제 다수의 전문매입사 중 가장 유리한 조건(낮은 수수료율 부과)을 제시하는 매입사를 선택하여 전표를 매도할 수 있어, 매입사 간 경쟁을 유도, 자연스럽게 수수료율 인하로 이어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문매입사의 도입은 카드전표 매입과 관련한 거래 단계가 추가되는 것이다. 지금은 발급사(매입사 업무 겸업)가 가맹점으로부터 직접 카드전표를 매입하지만, 매입사제도의 도입으로 가맹점에서 발생한 카드전표를 전문매입사가 매입한 후 이를 다시 발급사에 매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거래 단계 및 당사자가 하나 더 증가한다. 당연히 비용이 상승, 가맹점 수수료가 낮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국내 카드영업 실상을 살펴보면, 전문매입사 도입으로 오히려 중소형 가맹점의 수수료율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카드산업은 초기 전산인프라 구축을 위해 많은 투자가 필요한 장치산업으로,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수익성확보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전문매입사는 매출이 적은 중소 가맹점을 대상으로 영업하기보다는 카드매출이 많은 대형 가맹점을 우선 유치하려고 경쟁하게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중소형 가맹점은 영업 대상에서 오히려 소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신설된 전문매입사의 인프라 구축에 들어간 비용은 결국 가맹점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나라 카드사들은 장기간의 노력과 대규모 투자를 통해 가장 선진화된 결제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매입사 신설을 위한 또 다른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사회적 비용 증가와 그 비용은 가맹점이 떠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매입사가 신설될 경우 초기에는 경쟁이 강화될 수 있겠으나, 전문매입사가 거액의 전산설비투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정기간 경과 후에는 소수의 대형 매입사업자만 살아남게 되고, 결국 일부 대형 외국자본에 의해 국내 매입시장이 잠식되는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다.

세계 최초로 신용카드 제도가 생겨난 미국의 매입사업자 제도 도입 배경을 보면, 지금처럼 전산망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워낙 국토가 넓어 카드발급사들이 전표매입과 가맹점관리를 함께 수행하기가 어려워 자연스럽게 전표매입사제도가 정착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미국보다 국토가 좁고 전산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구태여 전문매입사 제도를 별도로 운용할 필요가 없었다. 중복 투자 등으로 인한 사회적 자원의 낭비를 가져오는 것은 확실한 반면, 중소 가맹점의 수수료 인하나 회원들의 편익 증대는 회의적인 전문매입사제도 도입은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