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영화를 보고 "말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럼 '말이 안 되는' 상황이란 어떤 것일까?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것일까, 아니면 헤어진 연인이 바로 곁을 지나치는 데도 못 본 척 하는 장면일까. '말이 안 된다'는 감상평 안에는 영화의 서사, 이야기에 대한 관객의 감식안이 숨어 있다. 그것은 '인과성(casuality)' 혹은 '개연성(probability)'에 대한 상식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영화의 사실성을 판단할 수 있는 인과성이나 개연성의 개념은 어떤 것일까?

영화 '엑스맨'의 한 장면. 조선일보 DB

남미의 소설가 보르헤스의 작품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지상의 왕과 환상의 왕이 미로 만들기 경쟁을 한다. 두 왕은 서로 탈출할 수 없는 미로를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미로가 완성되는 날, 두 왕은 서로가 만든 미로에 들어간다. 과연 어떤 왕이 이겼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지상의 왕이 만든 미로에 환상의 왕이 갇혀 죽는다. 보르헤스의 이야기는 우리가 앞으로 논할 개연성과 인과성에 대해 중요한 암시를 던져준다.

보르헤스의 소설 속에 나타난 결론은 이 세상,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령, 9.11 테러와 같은 사건들은 그 어떤 영화보다 끔찍하다. '투모로우'와 같은 재난 영화를 봤겠지만, 실제로 일어난 쓰나미나 쓰촨성 대지진은 영화보다 더 참혹하다. 영화가 아무리 참혹해도, 현실은 늘 영화보다 심각하고 우연적이며 복잡하다.

중요한 것은 비록 현실이 우연투성이 일지라도 영화는 우연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말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다.

영화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관성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캐릭터), 사회적 배경, 이야기의 앞과 뒤가 유기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는 일종의 인공물이다. 현실에서는 우연이 난무하고 종종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하지만, 영화는 발생하는 사건에 일정한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 등장인물의 성격, 사회적 배경 등을 고려해 우연한 사건에 필연성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 일관성이 바로 '개연성(probability)'이다. 개연성이란 '실제와 비슷하다' 혹은 '현실과 똑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에서 일어날 법하다'는 뜻에 가깝다. 영화 속 이야기 진행 과정을 통해 관객들을 설득하는 논리적 인과성이 바로 개연성인 셈이다.

가령, 영화 '매그놀리아'에는 마지막 부분에 갑자기 개구리 비가 쏟아져 내리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너무도 우연적이고 비현실적이라서 관객들은 "말이 안 된다"고 반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톱니바퀴처럼 질서 정연하게 흘러가는 현실에 약간의 고장을 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복잡다단하게 펼쳐지는 갈등과 반목을 보여준 후 감독은 기적적 화해의 순간을 개구리 비로 표현해낸다. 개구리 비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극복할 수 없는 오해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늘에서 개구리가 쏟아지는 기적적 순간을 통해 영화의 주제를 나타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가능해진다. 범죄 사실을 예측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돌연변이들이 등장하는 '엑스맨' 등은 말이 안 되는 영화일까.

SF(Science Fiction)영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이론적 가능성'을 담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SF영화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살리기 위해 시간적 배경을 먼 미래로 잡거나 공간적 배경을 지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설정한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가능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때로는 일부러 인과성과 개연성을 무너뜨려 관객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는 영화들도 있다. 기본기가 잘 된 화가가 입체파나 미래파의 그림을 그려내듯, 이러한 시도는 파격적 기쁨을 만들어낸다.

어떤 영화들은 지나치게 우연을 남용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등장인물 A와 B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C와 D는 천하의 원수다. 그런데 알고 보면 A와 C는 형제이고, B와 D는 자매이다. 뿐만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결국 어떤 관계로든 서로 묶인다. 살면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우연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다.

물론 현실에서도 우연한 사건은 많이 일어난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사고를 목격하기도 하고, 우연히 비행기를 타지 않아서 사고를 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시대적 배경에 걸맞지 않게 너무 현대적인 소품이 나온다거나 등장인물의 성격이 갑자기 변할 때 관객들은 그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다. 삶이 우연일지언정 영화 속 이야기에는 설득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객을 납득시키는 설득력이 바로 영화의 인과성이고 개연성이다.

더 생각해볼 거리

1.'말이 안 된다'고 기억되는 영화들을 선택해 어떤 점이 그랬는지 꼼꼼히 따져보자.

2. SF영화처럼 비현실적 상황을 납득시키는 장치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3. 비현실적인 것을 일부러 다루는 영화들을 골라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