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라페스타'. 점심을 먹고 나온 20대 서너 명이 중앙로를 한가롭게 거닐고 있다. 커피 전문점에도 테이블 3개에 손님이 앉아있을 뿐 전체적으로 한산한 모습이다. 같은 시각 옆 쇼핑몰 '웨스턴돔'의 커피 전문점은 담소를 나누는 직장인들로 빈 자리가 거의 없다.

2003년 '스트리트형 쇼핑몰'로 탄생한 라페스타는 한동안 일산의 명소로 이름을 날렸다. 폭 28m, 길이 300m에 이르는 넓은 중앙로는 고양시로부터 '문화의 거리'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을 닫는 가게가 늘어나고 공연도 줄어드는 등 주춤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는 "상권의 대부분이 웨스턴돔으로 옮겨갔다"는 말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일요일인 8일 저녁 라페스타. 조명을 환하게 밝힌 1층과 달리 2~3층은 영업을 안 하는 곳들이 많아 다소 어둡다. 라페스타측은 최근 상권이 약화되면서 고객을 다시 끌어들일 방법을 고심 중이다. 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작년부터 가게들 빠져나가

라페스타에는 실제로도 문을 닫은 가게가 쉽게 눈에 띄었다. A동 1층 상점 3곳은 비어있고, 한 곳은 '상가 이전'을 써 붙였다. 2층에도 2곳은 공사 중이고, 한 곳은 문을 닫았다. 라페스타측은 "현재 330개 매장 중 비어있는 곳은 30개 정도로, 공실률은 10% 정도"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업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훨씬 크다. 음식점을 운영 중인 김종식(가명)씨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라며 "연말엔 재계약 않고 떠나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웨스턴돔 하나공인 강기훈 대리는 "작년부터 가게들이 점점 빠져나갔다"며 "현재는 권리금이 없는 가게가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밝혔다.

말로만 문화의 거리… 경쟁력 없어

라페스타가 이렇게 주춤하는 이유는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시에서 지정한 '문화의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람들을 끌어 모을 만한 문화 행사는 거의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는 세계풍물축제, 루미나리에 행사 등 문화행사와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외국과의 문화 교류가 수시로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거의 열리지 않았다. 2004년 아테네올핌픽 때 라페스타에 모여든 붉은 악마들도 올해는 웨스턴돔으로 모여들었다. 문화의 거리 지정을 주도했던 길종성 고양시의원은 "처음엔 상시적으로 공연이 열리는 특색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시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했다"며 "관련 계획을 세우는 심의위원회도 2번밖에 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라페스타 옆 일명 '먹자 골목'에 술집과 안마시술소 등이 늘어나면서 라페스타의 이미지가 '유흥의 거리'로 퇴색한 측면도 크다. 일산에 사는 회사원 김모(38)씨는 "라페스타가 처음 생겼을 땐 부모님을 모시고 자주 갔지만, 이젠 낯뜨거운 전단지가 많아 가족들과는 함께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먹자골목에는 '호객행위 절대 하지 맙시다'라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있을 정도. 일산동구청측은 "경찰과 함께 정기적으로 불법 전단지와 호객행위를 단속하지만 가게가 워낙 자주 바뀌어 단속이 되풀이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가족 단위 고객과 중·장년층의 발길이 줄어들고 구매력 없는 10·20대만 남은 점은 라페스타 전체 상권이 축소하는 데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라페스타측은 "먹자골목은 도로 건너에 있지만 라페스타가 아니기 때문에 입점을 제한하는 등 자체적으로 구속하는 방법이 없어 안타까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문화공연 자주 올릴 것"

라페스타도 현실을 절감하고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인공 암벽을 설치해 관람객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분수대를 만드는 등 눈요기 거리도 늘릴 계획이다. 불편한 주차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오는 16일부터는 무인 시스템으로 주차장을 바꾸고, 주차타워를 세우는 등 대책을 마련 중이다. 문화공연을 위한 장비도 확충된다. 이석현 홍보팀장은 "지금까지 민원과 장비 부족 등으로 공연을 자주 못했다"며 "곧 음향장비를 확충해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공연을 자주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길종성 고양시의원은 "앞으로 고정 무대를 만들어 재능 있는 아마추어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는 등 '문화의 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문화인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거리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