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8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선릉역 부근의 A오피스텔. 테헤란로에서 불과 70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주상복합 오피스텔이다. 한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선릉○○'이라는 '오피스텔 성매매' 알선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
오피스텔에 도착해서 다시 그 브로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금은 아가씨가 2명밖에 없다"며 "키 168㎝에 '55사이즈' 아가씨와, 160㎝에 '44사이즈' 아가씨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했다.
흥정이 끝나자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11층에 도착하니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성이 다가와 돈을 받은 뒤 "○○호로 가라"고 했다. 이 오피스텔 11층은 모두 일반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브로커가 지정한 호실은 59.5m²(18평) 정도 규모의 원룸 형식 일반 가정집과 똑같았다. 2인용 침대·식탁·책상·소파 등의 가구와, TV·냉장고·세탁기 등의 가전제품이 갖춰져 있고, 20대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도심 번화가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성매매가 이뤄지는 신종 '오피스텔 성매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서울 강남역 부근이나 역삼·선릉·압구정·논현동 일대와 강북 지역 등 일반 사무실이나 주거용으로 지어진 오피스텔에서 성매매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다. 성매수자는 인터넷 성인사이트나 전단지 광고 등을 보고 이 곳을 찾고 있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 제정 이후 집창촌에서의 성매매는 줄어들었지만, 성매매 방식이 갈수록 지능적이고 음성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선릉역 부근 A오피스텔에서 만난 성매매 여성 강모(25)씨는 "이 방은 '실장'(브로커를 지칭)이 임대한 것"이라며 "실장과 1대 1로 연락하기 때문에 실장 밑에, 나와 같은 아가씨가 몇 명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경찰과 성매매 업자들에 따르면 오피스텔 성매매 전문 브로커 중에는 아가씨를 40~50명씩 거느린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 '1대 1' 방식으로 연락하고 있어,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다.
오피스텔 성매매가 급속히 확산되는 것은 손님들이 자기 집이나 사무실에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 여성 강씨는 "남의 눈치보지 않고 드나들 수가 있어 낮에도 찾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피스텔 성매매는 상당히 '호황'인 것 같았다. 한 유명 성인사이트 카페에는 오피스텔 성매매를 전문으로 알선하는 브로커의 연락처만 수십 개 올라와 있다. 이 사이트의 한 카페에는 회원들을 상대로 다음날 성매매에 나설 여성들의 프로필을 공개하고 예약까지 받고 있었다.
지난 19일 한 인터넷 성인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알선 브로커 12명에게 연락하자 1명을 제외하고는 "저녁시간대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예 "다음에 연락하라"며 전화를 끊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신종 성매매 방식에 경찰은 속수무책이다. 서울 강남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브로커와 성매매 여성이 점조직으로 연결돼 있어 단속이 어렵다"며 "오피스텔은 개인 주거공간이거나 사무공간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단속하려 해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2004년에 제정된 '성매매 방지 특별법'은 외형적으로 성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 제정 당시 당국이 파악한 성매매 집결지(집창촌)는 전국적으로 1696개소,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은 5717명에 달했다. 이후 경찰이 강력한 단속을 펴면서 2007년 9월 전국 성매매 집결지는 995개소, 성매매 여성은 2508명으로 감소했다. 성매매 방지법이 시행되기 전에 비하면 집결지는 700여개소, 집창촌 매매 여성은 절반이상 감소한 셈이다. 소위 '서울 588' '부산 완월동' '대구 자갈마당' 등 대표적인 집창촌들은 거의 사라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성매매 혐의로 검거된 인원은 갈수록 늘고 있다. 2003년 1만2737명에서 2007년 3만9236명으로 늘었다. 특별법 제정과 경찰 단속으로, 겉으로 드러난 집창촌 성매매는 줄어들었으나 음성적이고 변칙적인 성매매는 여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큰 변화는 없으면서 한쪽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른다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성매매 단속과정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매매 피해 여성의 자활을 돕고 있는 시민단체인 '다시함께센터'의 조진경 소장은 "특별법 제정과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성매매 방식이 '업소형'에서 인터넷을 매개로 한 '이동형'으로 변했다"면서 "신종 성매매에 대응하기 위해 정보통신관련법을 보완하고 인터넷에 대한 감시와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