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섣달 그믐날인 14일 저녁 어떻게든지 가족들에게 고기 맛이나 보여주려던 지게꾼 최모(57)씨가 복어 알을 주워다 가족들과 끓여 먹고 사망했고 처와 차녀는 중태에 빠졌다.' 1961년 2월 조선일보에 실린 1단 기사다. 그 시절엔 복어 독에 죽은 사람 기사가 연탄가스 중독사만큼이나 흔했다. '어부 11명 몰사, 고기 잡고 회항 도중 복어 먹고'(1960년 12월) '복어 알 연쇄 중독사, 죽은 사람 장사 지내다 또 두 명이'(1962년 1월)….
▶일본 속담에 "복어는 먹고 싶고 목숨은 아깝다"고 했다. 소동파(蘇東坡)는 "복어 맛은 사람이 한번 죽는 것과 맞먹는다"고 극찬했다. 복어 내장과 간에 든 독 '테트로도톡신'은 신경에서 근육으로 가는 명령을 차단해 먹자마자 입술과 혀가 마비된다. 20분 지나면 두통 복통과 함께 말하기도 힘들어진다. 빠르면 1시간 30분, 늦어도 8시간이면 사망한다.
▶복어 독은 몸에 있는 녹농균이라는 세균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어가 플랑크톤을 먹으면 플랑크톤에 붙어 살던 녹농균이 간이나 난소에 쌓인다. 양식 복엔 독이 없는 것도 녹농균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복어 회에 희석한 독을 조금 뿌려 먹는다. 맛이 더 좋을 뿐 아니라 미세한 독이 온몸에 퍼지면서 몸을 덥히고 피로와 숙취를 풀어준다고 한다. 일본에선 이 미묘한 독의 한계를 즐기다 한 해 서너 명이 죽는다.
▶한 달 전 이른 아침 골프장에 가다 고속도로 갓길에 선 승용차 안에서 고교 선후배인 의사 김모씨와 의류회사 대표 박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가 119에 전화를 걸어 "약물 중독"이라며 구조를 요청한 뒤였다. 휴게소 쓰레기통에선 김씨가 버린 것으로 보이는 주사기 1개와 드링크 2개가 나왔다. 이 사인(死因) 불명 사건에 중요한 단서가 나왔다. 박씨 몸에서 복어 독 테트로도톡신이 검출된 것이다. 김씨가 숨지기 사흘 전 중국 다롄(大連)에 주문해 산 것이라고 한다.
▶테트로도톡신은 독성이 청산가리의 1000배나 된다. 0.5~2㎎이 어른 치사량이다. 경찰은 김씨가 사들인 테트로도톡신 중에 1.5㎎ 캡슐 한 개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그래도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두 사람이 금전관계도 없고 자살할 이유도 없다고 보고 있다. 누가 왜 복어 독을 먹였는지 의문은 더 커졌다. 색깔도 맛도 냄새도 없는 복어 독처럼 영 실체가 보이지 않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