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style="text-align:center"><a href=http://book.interpark.com/gate/IP3Gateway.do?_method=IP3&biz_cd=TB0008&goods_no=201494193 target='_blank'><img src=http://health.chosun.com/wdata/photo/news/200510/20051024000007_01.gif width=110 border=0></a><

"빨래는 한국 여인들의 신산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실오라기 만한 개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한국의 여인들은 빨래를 하고 있다. 서울의 깊은 밤, 괴괴한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다닥 다닥 빨래 감을 두드리고 있는 다듬이 방망이의 그 쓸쓸한 소리다."

1894년 조선을 찾은 예순 한살의 영국인 여성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눈에 띈 것은 종로거리를 눈 더미처럼 하얗게 뒤덮은 흰 포목 두루마리들이었다. 남자들의 흰 두루마기와 그것을 빨아서 깨끗이 다듬는 여성들의 노동을 한 눈에 엮어낸 날카로운 분석은 여성에 대한 학교 교육도 재산권 행사도 엄격하게 규제되어있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를 못 견뎌 했던 그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

우리 나라에는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1898년 첫 발행)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이사벨라의 삶은 그의 시대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의 눈으로 봐도 경이로움 그 자체다. 키 147㎝의 자그만 여인이 본격적인 여행가와 작가로 활동한 것은 40세가 넘어서였다. 51세에 결혼을 했다. 분신과도 같은 여동생이 죽은 뒤였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여행을 떠난다는 조건이었다. 홀로 인도로 향한 것은 58세가 되어서였고 중국, 티베트, 일본, 조선을 여행하며 뛰어난 여행기를 남긴 것은 60세가 넘어서였다. 브론테 자매와 제인 오스틴, 버지니아 울프를 합친 것 같은 이 여자는 당시 유럽인(특히 여성)에게는 '외계'와 다름없었을 동양의 오지만을 골라 다녔다.

바움 제공

그는 에베레스트를 보기 위해 깎아지른 바위 고갯길을 넘었고, 한강을 나룻배로 종주했다.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다. 이 모든 여행을 홀로 계획하고 실행했으며, 매일 매일 일기와 편지로 기록을 남겼다. 그의 여행기는 단순한 인상이나 감상의 기록이 아니라 인류학적, 지리학적 서술이었으며 여행 지역의 사회와 정치 분석을 담고 있었다. 식민주의가 주도하던 시대에 쓰인 글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현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개방적인 한편, 부패와 악에 대해서는 매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는 1831년 엄격한 복음주의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나이팅게일이 간호사가 된 것이 큰 스캔들이었던 시절이다. 그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여학생을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글을 배우고 독서로 교양을 쌓은 그는 나이가 차면서 요통과 두통, 불면증에 시달렸다. 뛰어난 지성에도 불구하고 고등 교육도, 전문 직업도 가질 수 없었던 그는 당시 비슷한 처지의 많은 여성들이 그랬듯, 마음의 병을 몸으로 앓았다.

의사들은 그에게 "공기를 바꿔보라"는 처방을 내렸다. 캐나다미국으로 떠난 첫 여행에서 그는 언제 아팠냐는 것처럼 펄펄 날았다. 그가 보낸 편지를 읽은 아버지는 책을 쓰라고 권했다. 첫 책, 《미국에 간 영국 여인》은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나왔다. 책이 잘 팔렸지만 그는 불안을 느꼈다.

두 번째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그를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후원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여행이 아버지의 죽음을 불렀다고 생각한 그는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그가 다시 여행 길에 오른 것은 41세가 되어서였다.

작가로 명예와 부를 얻었지만, 그는 성 차별이 엄존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글과 행동에서 여성의 자의식을 분명히 드러냈다. 영국 왕립지리학회가 그를 연사로 초청했을 때, 학회가 여성 회원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청을 거부했다. 대신 여성회원을 인정하는 왕립 스코틀랜드 지리학회의 연설을 수락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왕립지리학회는 그를 명예회원으로 인정했고 12명의 여성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저자는 이사벨라에게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행가'와 '병들고 무력한 여성'이라는 모순을 발견한다. 저자는 이사벨라가 여행을 떠나면 에너지와 열정이 되살아나는 모습에서 저자는 자신이 겪는 어려움의 원형을 공감하고 그의 전기를 쓰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이사벨라의 말(편지와 저서)을 최대한 인용하는 '구두 전기'를 실험했다. 한 세기를 뛰어넘어 여성이 여성을 이해하고 드러내는 글쓰기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형식이다.


◆더 읽을 만한 책

이사벨라의 여행기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집문당)과 《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효형)가 번역돼 있다.《동방을 꿈꾸며》(말글빛냄)는 19세기 비숍을 비롯, 동방으로 홀로 여행을 떠난 서양 여성들을 소개한다. 영국사학자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일그러진 근대》(푸른 역사)에서 엘리트 외교관 출신 영국 남성 조지 커즌과 비숍이 조선과 동양에 대해 보여준 관점의 차이를 흥미롭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