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참모진 여러 명을 질책했다고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싸고 증폭된 여론 악화와 정부의 늑장 대응이 출범 3개월도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사람들은 '위기' 앞에 자꾸만 움츠러들 뿐 국면 타개의 샘터가 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보좌 기능과 국정의 사령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청와대 조기 개편론까지 불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미 협상 때부터 전략 부족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6일 "지난달 18일
타결 때 솔직히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청와대는 무엇보다 작년 10월
[노무현]
정부 때 결렬됐던 협상을 미국과 타결시키려면 그 사전과 사후에 대국민 설득을 충분히 했어야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간에 쫓겨 협상을 제대로 못한 것 아니냐는 국민들의 의구심을 자초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공식 발표 전에 "쇠고기 협상 타결이
[한·미 FTA]
비준에 도움이 될 것"이란 취지로 말한 것도 '부실(不實) 협상론'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타결 후에도 청와대는 쇠고기 협상의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인 홍보를 제대로 기획하지 못했다. 특히
이 커질 가능성,
에 대한 홍보 필요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주무 부서인 경제수석실은 한우브랜드 대책과 폭등하는 사료값 대책에만 골몰했을 뿐이다.
◆사전 경보 기능 고장
이 대통령은 얼마 전 "도대체 민정(수석실)은 뭐하고 있나"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민정수석실은 정무수석실과 함께 여론동향과 반(反)정부세력의 조직적 움직임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해 국정에 반영해야 할 부서다. 그러나 "현재 인터넷에서 광우병 논리가 크게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해 대응할 필요가 있음"이라는 식으로 단순 보고만 했을 뿐 '경보음'을 제대로 울리지 못했다. 정무수석실도 이 문제가 이명박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대통령에 대한 정무적인 조언을 소홀히 했다.
◆부처 관리 능력 미흡
2일 오후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합동회견은 당초 5일로 잡혀 있었다. 그러나 2일 오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이 대통령과의 정례회동에서 사안의 시급성을 보고하고 때마침 언론이 정부의 무대응을 질타하자 부랴부랴 앞당긴 것이다. 경제수석실과 사회정책수석실이 정부 부처를 다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청와대의 홍보 조정 기능은 구멍이 크게 난 상태다. 오죽했으면 이 대통령이 지난달 말 한 회의에서 "국정홍보처를 폐지한 것이 실수"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정무수석실과 대변인실 간에 홍보 기능을 둘러싸고 제대로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 데다, 문화관광체육부의 대(對)언론 기능도 어정쩡해 쇠고기 문제와 같은 범부처 이슈에 대한 종합 홍보 사령탑이 부재한 상태다. 특히 노무현 청와대와 달리 인터넷에 대응할 조직도, 능력도 없는 형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당의 인터넷팀의 도움이라도 뒤늦게 받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나서는 사람 없어
청와대 각 수석실의 그 누구도 지금까지 쇠고기 문제 파문의 전말이나 오해를 밝히려고 기자들 앞에 나선 적이 없다. 본격적인 대응은 각 부처가 맡는다고 하더라도 국정의 사령탑은 사령탑대로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한 대(對)언론 노력을 해야 하는데도 모두들 뒷짐을 지고 있는 형국이다. 대변인실에서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부탁해도 너도나도 피한다는 것이다. 행여 다칠까봐 몸을 사리는 것이다. 출범 초기 청와대가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그 실수를 앞장서 교정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