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1억원짜리 명품 바둑판을 둘러싸고 살아 있는 전설적 바둑 천재인 중국의 오청원(吳淸源·94) 九단, 일본 바둑계의 거장인 고(故)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1889~1973) 九단, '세계 바둑 황제'에 올랐던 한국의 조훈현(曺薰鉉) 九단 등 기라성 같은 한·중·일 바둑 고수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법정 싸움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2004년 6월 부산시바둑협회 본부장을 지낸 김영성씨가 1억원짜리 희귀 바둑판 두 세트를 '마당발'로 소문난 국내 프로 바둑기사(九단) 윤기현(66)씨에게 팔아달라고 맡기면서부터다.

일본산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과 흑·백 조개 바둑알, 바둑통, 바둑통 보관함으로 구성된 세트로 이 가운데 하나는 오청원 九단이 서명해 '오청원반 세트', 다른 하나는 세고에 겐사쿠 九단과 일본 대신들이 함께 서명해 '세고에반 세트'로 불린다.

오청원 九단 故세고에 九단

지독한 바둑 애호가였던 김씨는 1972년 조훈현 九단의 소개로 오청원반 세트를 구입했고, 1992년 역시 조훈현 九단을 통해 세고에반 세트도 구입했다. 김씨는 그러나 간암으로 생명이 위독해지자 치료비와 가족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이 바둑판 세트들을 내놓았고, 한 달 뒤 병세가 악화돼 사망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5년 7월 두 세트 가운데 세고에반 세트가 한 일본인에게 1000만엔에 팔렸다.

소식을 들은 김씨 가족들은 윤씨에게 바둑판 매각대금을 요구했지만 윤씨가 2006년 11월 오청원반 세트만 돌려주자 윤씨를 상대로 지난해 6월 부산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인 부산지법 민사8부(재판장 김동윤 부장판사)는 최근 "김씨가 윤씨에게 바둑판 세트 매각을 위임한 것이 인정된다"며 "1000만엔(9400만원)을 김씨 가족들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윤씨는 "당시 김씨가 오청원반 세트를 팔아달라고 부탁하면서 세고에반 세트는 나에게 증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며 "후에 세고에반 세트는 임자가 나타났지만 오청원반 세트는 팔리지 않아 되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사실관계가 다르므로 당연히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오청원 九단은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신포석법을 창안하며 일본 바둑계를 평정했고, 1984년 은퇴했지만 아직도 '불멸의 기성'으로 존경받고 있다. 세고에 겐사쿠 九단은 평생 3명의 제자만 길렀는데 그들이 바로 오청원, 조훈현, 하시모토 우타로 등 한·중·일 바둑계를 호령한 영웅들이다. 특히 일본으로 데려가 길렀던 애제자인 조훈현이 1972년 한국의 병역의무 때문에 귀국하자 그 슬픔을 달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