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매우 소심했던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지동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죽기 직전에야 지동설을 담은 책을 출판했으며 더 나아가 일부러 어렵게 써 이 책을 이해한 사람이 매우 드물었다. 게다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었다. 근대 과학혁명을 이끈 과학자 중의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코페르니쿠스는 여전히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의 우주론에 기원을 둔 중세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행성들은 원운동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완전한 대상들이 있는 공간'과 '불완전한 대상들이 있는 공간'으로 나뉜다. 이렇게 우주를 둘로 나누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근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사고에 의하면 완전한 대상은 그 자체로 변화가 없어야 한다. 완전함이란 완전무결을 의미하며 완전무결한 대상은 자신의 현재 상태에서 더 좋아질 이유도 없으며 더 나빠질 필요도 없다. 즉 완전한 대상은 변화할 필요가 없다. 이에 반해 불완전한 대상은 좀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변해야만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변화'란 '불완전성'을 의미하며 '불변'은 '완전성'을 의미한다고 여겼다. 이런 점에서 조화를 이루며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대상은 불변하는 운동을 하는 완전한 대상이 되며, 모든 완전한 대상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에 선(善)하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완전한 물체가 움직이는 모습이 바로 '원운동'이라고 했다. 원운동은 운동의 모습이 변하지 않으면서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 하에서 원운동을 하는 천상의 행성들은 완전한 대상이고 포물선 운동을 하는 지상의 물체들은 불완전한 대상들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중세를 거쳐서 근대 초기까지 모든 학자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 중심적인 우주관을 타파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천상의 물체들은 완벽한 원운동을 해야만 한다'는 중세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는 타원 운동을 하는 행성들을 원운동에 끼워 맞춰야 했다. 특히 문제가 됐던 점은 '행성의 역행운동'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행성의 역행운동이란 행성들의 공전 속도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지구에서 볼 때, 몇몇 행성들은 가끔씩 반대방향으로 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천동설의 프톨레마이오스는 이 문제를 '주전원(周轉圓, epicycle)'을 사용해 해결했는데, 비록 천동설은 아니지만 행성의 원운동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도 주전원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못지않게 복잡했다.

이 때문에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했다. 다행히도 코페르니쿠스 사후 50년이 지난 뒤 이탈리아 출신의 수도사인 부르노(G. Bruno, 1548~1600)가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됐다. 부르노는 희랍어, 라틴어, 수학, 철학 등에 능통했으며 고대 철학에서부터 당시의 최신 학문에 이르기까지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범신론적 무한 우주론(모든 우주의 물체들이 그 자체로 신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믿고 있고,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 부르노에 따르면, 우주는 무한하고 무한한 우주 안에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어딘가에 또 있을 수 있으며, 당연히 인간과 비슷한 지적인 존재가 우주 다른 곳에서도 살고 있을 수 있다. 브루노의 이런 주장은 "우주의 중심인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은 우주의 유일한 지적 존재"라며 인간의 위대함을 말하고 더 나아가 인간을 창조한 신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교황청의 뜻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교황청의 미움을 사 이탈리아 대학의 수학교수 임용에서 떨어진 후 부르노는 정처 없는 망명생활을 한다. 유럽을 떠돌면서 자신의 이론을 전파하던 중 이탈리아 젊은 귀족의 밀고로 체포돼 7년 간 투옥됐다. 이 과정에서 이단적 주장을 철회하라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렸지만, 끝까지 "내 주장 어디가 이단(異端)인지 알 수 없다"며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다 1600년 2월 화형에 처해졌다.

설사 부르노가 교황청의 교리에 반하는 이론을 주장했다 하더라도 카톨릭 수도사를 화형 시킨 일은, 그것도 중세가 아닌 근대 시대에, 아주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암흑의 시대라고 불리는 중세 시대에도 화형에 처해 진 사람들은 대부분 힘없는 하층민 여성이었다. 암흑의 시대에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던 수도사를 화형 시키는 일이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났으니 당시 사람들은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부르노가 주장했던 지동설도 덩달아 유명해지게 됐다. 교황청에서 그렇게 막으려고 했던 지동설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총명한 학자들은 비밀리에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읽었고 지동설은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결국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극단적인 방법으로 진리를 감추려 했던 교황청의 노력은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듯 언제나 진리는 권력보다 강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