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3일 "앞으로는 정치인보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인들이 공항 귀빈실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이날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중소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인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본지 1월 4일자 보도


대통령 당선자의 이 같은 발언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공항 귀빈실이 세간에 화제가 됐다. 급기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7일 귀빈실을 이용할 기업인 1000명의 명단을 제출해 달라고 주요 경제단체에 요청했다. 대체 공항 귀빈실이 어떤 곳이기에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언급하고 나선 것일까.

공항 귀빈실은 보통 의전실이라고도 한다. 인천공항의 경우 공항터미널 3층 동(東)쪽 맨 끝에 위치해 있다. 국내선 탑승장 옆으로 가면 귀빈실로 이어지는 통로가 나온다. 이용객들은 보통 1층 VIP 주차장에 하차한 뒤 엘리베이터를 통해 귀빈실로 이동한다.

인인천공항 귀빈실은 각각 화장실이 딸려있는 7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각 방의 이름은 매화, 난초, 무궁화, 소나무, 국화, 대나무, 해당화이며, 가장 작은 방이 국화와 대나무(각각 79.2㎡)실, 가장 큰 방이 무궁화(145.2㎡)실이다. 무궁화실과 해당화실은 기자회견장으로도 쓰인다. 작년 6월엔 미스코리아 이하늬씨가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입상하고 귀국할 때 해당화실을 기자회견장으로 쓰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져 네티즌의 비난을 샀다.

인천공항 귀빈실 중에서도 최고 귀빈에게만 개방하는 소나무실. 다른 방들과 달리 우리나라 전통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방마다 서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나무실은 전·현직 대통령, 전·현직 3부요인(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전·현직 헌법재판소장 등 최고 귀빈에게만 개방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대부분의 방들이 사각 테이블이 놓인 회의실 분위기인 데 비해, 소나무실은 원형 테이블에 인테리어도 우리나라 전통 양식으로 꾸며졌다.

인천공항 외에 의전실이 있는 공항은 김포·김해·제주·대구·광주·청주·양양·울산·여수공항 등이다. 김포·김해·제주공항 귀빈실의 경우 지난 2006년부터 유료로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이용 요금은 국제선의 경우 2시간 기준으로 7만7000원(부가세 포함), 국내선은 5만5000원(부가세 포함)이다. VIP를 접대하는 기업들이 주(主) 고객이고 개인이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공항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은 우선 건설교통부령 303호 '공항에서의 귀빈 예우에 관한 규칙'에 명시돼 있다. 전·현직으로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이 포함되고, 현직으로 국회에 원내 교섭단체를 가지는 정당의 대표, 주한 외국공관의 장, 국제기구 대표, 귀빈실 사용 대상의 배우자 및 자녀 등이 해당된다. 이들 외에도 공항공사 내규(귀빈실 운영규정)에 따라 장관급 이상(차관급 不可)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국립대 총장, 경제 5단체장, IOC위원 등이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다.

공항 귀빈실의 으뜸 단골은 단연 국회의원들이다. 전체 귀빈실 이용객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지난 2001년 인천공항 개항 당시만 해도 국회의원들은 귀빈실 이용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하지만 자신의 상급기관인 건교부를 쥐고 흔드는 국회의원들의 등쌀에 못 이겨 인천공항공사는 결국 국회의원을 대상에 포함시켰다.

국회의원들이 기를 쓰고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려는 것은 단순히 출국 전에 쉬어갈 공간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핵심은 귀빈실 이용객에 대해선 출입국 심사를 대신해 주는 등의 의전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귀빈실 이용객은 공항공사 의전팀 직원이 출입국 수속을 대신 밟아주고 보안검색이나 출입국 심사대도 상주직원이나 항공사 승무원 등이 이용하는 별도의 창구를 이용한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은 해외로 나갈 때 최소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야 하지만 귀빈실 이용객들은 30분 전에만 도착해도 탑승에 지장이 없다. 김포·김해·제주공항 의전실을 유료로 이용할 때는 이 같은 의전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귀빈실을 이용한다고 해서 다 같은 귀빈이 아니다. 공사 내규가 아닌, 건교부 규칙에 귀빈실 이용 대상으로 명시된 전·현직 대통령·3부요인·헌법재판소장 등은 출입국 심사대를 거칠 필요 없이 의전실과 탑승구를 곧바로 연결하는 전용문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문 두 개만 통과하면 곧바로 탑승구가 나온다고 해서 이 문을 '더블 도어'라고도 부른다. 두 개의 문 사이엔 일반 승객들이 출국장에서 보안검색을 받을 때 통과하는 문(門)형 금속탐지기가 놓여있다.

천공항 의전실의 더블도어를 통과하면 바로 앞에 9번 탑승구가 나타난다. 전·현직 대통령, 현직 3부 요인 등에 대해선 보안기관과 협의해 아예 이들이 탈 항공기를 9번 탑승구에 댈 수 있도록 조치해 주기도 한다. 동선(動線)을 최소화해 주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 의전팀 관계자는 "이런 식의 최상급 의전을 해주는 경우는 한달에 2~3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작년 11월엔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됐다. 전직 대통령 2명(전두환·김대중)이 같은 날 약 10분 간격을 두고 인천공항에서 해외로 출국하게 된 것이다. 시간대가 비슷했기 때문에 동선이 가장 짧은 9번 탑승구에 댈 수 있는 비행기는 한 대뿐이었다. 일종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 이들을 수행하는 관계자들로선 몹시 곤혹스런 상황이었다. 결국 9번 탑승구는 전두환 전 대통령 몫이 됐다. 그렇다고 전 전 대통령 측이 '기싸움'에서 이겼다고 할 수만도 없다. 김 전 대통령은 바로 옆 8번 탑승구를 이용하는 대신 최고 등급인 소나무실을 귀빈실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은 오는 6월 제2 탑승동 개항에 맞춰 공항터미널 2층 중앙과 현재 공항경찰대가 입주해 있는 터미널 3층 서쪽 끝에 각각 귀빈실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중앙 귀빈실은 오는 3월쯤, 서쪽 귀빈실은 6월쯤 완공될 예정이다. 이는 대통령 당선자의 지시와 별도로 추진돼 오던 사안이지만 당선자 발언 이후 규모나 배치 등에선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17명인 의전실 인원도 대폭 보강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