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엊그제 장석화 전 의원이 "BBK 특검법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각하(却下) 결정을 내렸다. 각하 이유는 "특검법이 시행되어도 제3자인 청구인(장 전 의원)은 기본권 침해 여부 등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결정이 불과 5일 만에 '신속하게' 나왔다는 점이다. 장 전 의원은 그 닷새 전인 지난 12월 26일 헌법소원을 냈었다.

앞서 2006년 2월 대법원은 특정한 사건은 신속하게 재판한다는 내용의 '중요 사건의 적시(適時) 처리 방안'을 발표했다. 예를 들어 재판이 지연되면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는 사건, 다수 당사자가 관련된 사건, 일정 시점이 지나면 재판 결과가 무의미한 사건, 소모적인 논쟁이 우려되는 사건 등이 적시 처리 사건이다. 대법원은 이 기준에 따라 새만금 사건, 고엽제 피해자 사건, 황우석 교수 사건, 동국대 강정구 교수 사건 등을 신속히 재판하고 판결했다.

이 제도의 도입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그 전까지 법원은 예를 들면 선거법 위반이 명백한 국회의원, 뇌물수수가 명백한 국회의원들이 임기가 끝날 무렵에야 의원직 박탈 형을 내려 범법자의 의정활동을 3~4년씩 방치했다. 또 호주제를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야 “여성들도 종중원으로 인정한다”는 ‘때늦은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지연된 사건 처리를 빗댄 법조계의 은어(隱語)가 ‘미뤄 조지기’다. 대부분은 관련자들을 ‘불러(소환해) 조지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사건 처리를 늦춰 김을 빼는 것이 ‘미뤄 조지기’이다. 법원이 ‘적시 처리 사건’ 제도를 도입한 데에는 이처럼 미룸에 의해 불이익을 주는 관행을 개선해 보자는 취지가 있는 것이다. 한편 검찰도 지난해 8월의 ‘도곡동 땅 차명의혹 사건’, 12월 5일의 ‘BBK 사건 발표’에서 보듯이 신속한 수사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법원이나 검찰이 제때 시시비비를 가려 주지 않아 억울한 피해자들이 나타나는 현상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법언(法諺)에서 보듯, 결과와 더불어 타이밍이 중요한 사안도 많다. 상처 난 환자를 제때 치료해 주지 않아 그 상처가 깊어지거나 환자를 죽도록 방치한다면 의사가 아닌 것처럼, 제때에 올바른 결정을 해 주지 않으면 정의가 아닌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마찬가지다. 마침 지난 12월 28일 이명박 당선자의 큰형 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 등 6명도 헌법소원을 냈다. 이 사건은 신청인이 이 당선자의 큰형과 처남 등 '직접 관련자'가 될 만한 사람들이라 장 전 의원 사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국민들의 관심은 헌재가 이 사건을 '언제' 처리하느냐이다. 이 사건의 대상이 된 BBK 특검법은 이 당선자의 취임식 전날(2월 24일)까지만 유효한 한시법(限時法)이기 때문에 취임식 이후의 결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사건뿐 아니라 �종합부동산세 위헌 여부 사건 �기자실 통폐합 사건 등 노무현 대통령이 강행한 정책 집행과 관련된 사건들도 미룰 이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나중에 새 대통령이 정책을 바꾼 뒤에 위헌 선언을 해도 '미뤄 조졌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재판관 9명은 모두 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이후에나 결정하려는 게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는 되도록 받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