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때문에 자기를 희생해도 아깝지 않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생각이다.”(다쿠시마 노리미츠, 마츠시마 해군항공대 소속으로 1945년 4월 실종) “우유부단한 일본이여/ 그대 아무리 어리석다 해도/ 우리들은 이 나라의 사람인 이상/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설 수 밖에 없도다.”(하야시 다다오, 해군비행 예비학생으로 1945년 7월 전사)

3년 전 국내에서도 출간된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모멘토)에서 가미카제 특공대의 미(美) 의식을 파헤쳤던 저자는 일본의 문화인류학자다. 그 후속편인 이 책(원제 ‘學徒兵の精神誌’)은 태평양전쟁 말기 ‘꽃다운 나이’에 지원을 강요 받아 전장에서 희생당한 ‘학도병’들의 수기와 일기를 분석한다.

▲ 강아지를 안고 있는 소년 가미카제 특공대원. 일제의 선전용 사진이다.

이들은 과연 ‘천황’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으로 ‘사쿠라처럼 산화’해 버린 어린아이들이었나? 저자는 이 막연한 통념에 대해 “아니다”고 말한다. 상당수의 학도병들은 자유주의와 마르크시즘을 신봉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대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수기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지적 수준과 독서량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갓 스무 살쯤 된 나이에 마르크스·엥겔스, 니체와 헤세를 원서로 독파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며, 일본 군국주의가 국민들을 속여 전쟁으로 치닫고 있음을 정확히 간파한다.

그들은 분명 ‘천황’을 위해 목숨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출신인 하야시 다다오는 일기에서 이렇게 적는다. “지금은 새벽이다. 밤 3시다. 아!! 죽고 싶지 않다.”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에 다니다 특공대에 지원하고 1945년 4월 전사한 사사키 하치로는 스스로를 ‘반전론자(反戰論者)’로 규정한다. “전쟁을 거부하는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 잔혹한 훈련을 시키고 결국 죽이고 마는 것은 비인도적인 것이 아닌가?”라고 쓰던 그는, 전쟁이 파국으로 치닫자 자신의 죽음에 대한 낭만주의적 합리화를 시도한다. 그것은 “물질주의와 에고이즘에 부패한 낡은 일본을 파괴하고 새로운 일본이 불사조처럼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들마저 ‘천황의 방패’로 삼아 죽음으로 몰아넣은 군국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특공대 소속의 일부 엘리트들이 전체 ‘황군(皇軍)’의 이데올로기를 대표할 수 있는가는 의문일 뿐더러, 역자의 말처럼 ‘유럽의 인권 문제인 드레퓌스 사건에는 흥분하던 엘리트 학도병들이 식민지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일들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는 점 역시 지나치기 어렵다. 가미카제를 9·11테러의 원조로 보는 시각을 굳이 부정하려는 저자의 태도에도 의구심이 든다.

역자인 이향철 광운대 교수는 책 말미에 게재한 68쪽 분량의 보론을 통해 균형잡기를 시도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한국 출신 가미카제 특공대원은 모두 11명이었으며, 미당 서정주의 친일시에 등장하는 마쓰이 히데오(인재웅)는 시 내용처럼 죽은 것이 아니라 미군 포로로 살아남아 ‘부산 상륙 훈련’을 받았으며 1946년 귀향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