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뇌지주막하 출혈이 발생했습니다. 뇌동맥류가 파열돼 생겼지요. 개두술 후 동맥류를 결찰하는 수술이 필요합니다. 수술 후 뇌부종, 뇌혈관연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응급실에서 당황하는 환자나 보호자를 앞에 놓고 의사가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나 보호자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달리 말하면 이렇다. “뇌를 싸고 있는 막과 뇌 사이에서 출혈이 발생했어요. 원인은 뇌동맥에서 꽈리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 터졌기 때문이지요. 머리를 열고 꽈리의 목 부위를 클립으로 묶어 더 이상 피가 꽈리로 들어가서 다시 출혈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 후에는 뇌가 부을 수 있습니다. 또 뇌동맥이 좁아져 혈액 순환이 안 될 수 있죠.”
물론 환자나 보호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보다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의학 용어는 거의 한자어로 돼 있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선 사용할 일도 거의 없는 용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사들은 일본식 한자로 된 어려운 의학 용어를 쓰거나 영어로 된 의학 용어로 의사 소통한다.
“ESR(적혈구 침강속도) 수치가 상승되어 있으나, chest(가슴) PA(X-레이 뒤에서 앞으로 찍는 것)상에서 TB lesion(결핵병변)은 inactive(비활동적인)한 상태여서 sputum exam(가래 검사)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사실 이렇게 의사들이 영어로 말한다고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의학 용어만 나열하면 대충 알아듣기 때문이다. 물론 진료 기록부에도 영어로 기록한다. 어떻게 하면 환자들이 잘 알아듣도록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한글로 진료 기록지를 쓰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한글로 쓴 진료 기록을 보면 환자의 증상을 더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두통만 해도 “머리가 휑하고, 멍하고, 칼로 후벼내고, 때론 망치로 두들기듯 아파요”라는 다양한 표현이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고 억지로 만든 한글로 쓰면 이해하기 더 어렵다. ‘두개골-머리뼈’ ‘농양-고름집’ ‘수두증-물뇌증’ ‘부비동-코주위 동굴’ ‘경막하수종-경질막 밑 물주머니’ 이런 말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날 정도이다. 한글로 풀어 쓰면 이해가 쉽지만, 말도 길어지고 무슨 내용인지 감이 안 잡힐 때가 더 많다.
서로가 잘 통하는 말로 의사 소통하는 것이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의학 단체에서는 인체의 명칭과 병명, 수술명 등을 우리말 식으로 바꾸어 의학 용어집을 만들었다. 현재 모든 의과대학에서는 이 용어집의 우리말 용어와 기존의 한자식 용어를 바탕으로 의대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때문에 의대생들은 바쁘다. 영어, 한자어, 우리말식 용어를 모두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용어의 혼돈과 혼란이 오는 과도기 시대인 셈이다. 앞으로 10여 년 뒤면 우리말로 무장한 의사들이 대거 나오게 될 것이다. 아직 나이 든 의사들에겐 한글 용어는 오히려 사용하기에 어색한 면이 있지만, 대세는 한글이다. 환자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는 노력은 알기 쉬운 우리말 의학 용어 사용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 세대 의사들도 의학 용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생소한 우리말 용어를 외우는 것이 더 어려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