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관학교 3학년 김호연(18·사진)군은 지난달에 치러진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미국 대학입학능력시험)에서 2400점 만점을 받았다. SAT 만점이 1600점에서 2400점으로 바뀐 이후 민사고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해외 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유학반 학생이 아닌, 국내 대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계열 학생이라는 것. 김군은 이밖에도 텝스 968점, IBT 118점을 받은 ‘영어 박사’다.
김군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다니는 아빠를 따라 해외 이곳 저곳을 옮겨 살았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는 미국에서 다녔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거쳐 지난해까지는 아일랜드에서 살았다. 한국에 온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김군은 “영어실력을 반영해주는 민사고 편입시험에 지원해 합격했다”고 말했다.
김군은 올 대학입시에서 일단 수시모집 재외국민 전형에 지원할 계획. 이번에 SAT를 본 것도 재외국민 전형 때 유리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다. 중·고교 과정 3년 이상을 해외에서 이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재외국민 전형에서는 IBT 토플이나 SAT를 전형자료로 반영하기도 한다.
영어만큼은 자신 있었던 그였지만 SAT 준비는 쉽지 않았다. 내신 관리와 SAT 준비를 함께해야 했기 때문. 교과 과정 속에 SAT를 위한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개인 시간을 쪼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SAT 준비를 시작한 것은 올해 초. 작년 12월에 처음 본 SAT에서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지 못한 후였다. 김군은 먼저 영어에 대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SAT 시험 과목 중 독해부문에서는 틀린 문장을 고치는 객관식 문제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영어의 흐름을 알지 못하면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군은 영문책, 영자신문 등을 틈틈이 읽으면서 자연스러운 표현을 익혔다. 어려운 책보다는 찰스 디킨스나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즐겨 읽었다. ‘프리즌 브레이크’나 ‘웨스트 윙’ 같은 미국 드라마를 자주 본 것도 또 다른 방법. 그는 “주인공들의 대화량이 많은 드라마를 보면 어려운 단어나 관용 표현을 알 수 있다”며 “휴식도 취하면서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SAT 준비 과정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투자한 것은 바로 에세이. SAT 과목(SAT는 독해, 에세이, 수학을 본다) 중 제일 먼저 시험을 보고, 시간도 부족해 점수의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주제가 광범위하게 출제돼 영어 실력과 글쓰기 실력이 없으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김군은 거의 매일 장문의 일기를 영어로 쓰며 에세이를 준비했다. 시간을 정해두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하루의 일과를 정리했다. 또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서술하는 연습을 했다. 김군은 “SAT 에세이 과목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주제와 연관시켜 쓴 글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며 “평소 남들이 하지 못한 특이한 경험을 따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주제에 그는 중학교 때 외국에서 겪어야 했던 유학생의 안 좋은 기억을 앞머리에 썼다.
김군은 SAT에서 만점을 받아 해외 명문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국내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서다. 김군은 “어렸을 때 외국에서 많이 살아봤지만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외국에서 평생 살 생각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