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의 뮤지컬 공연장에서 기립박수(Standing Ovation)는 정체불명의 세러모니가 돼버렸다. 기립박수를 치는 관객도, 기립박수를 듣는 배우도 특별한 이유도 없고 감흥도 없다. “같은 뮤지컬인데 기립박수가 나온 날보다 안 나온 날 공연이 더 나았다”는 까무러칠 증언까지 나온다. ‘공연을 완성시키는 건 기립박수’라는 표현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기립박수는 거품박수로 변질되고 있다.
1984년 10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베를린 필 내한공연. 지휘자 폰 카라얀은 공연이 끝난 후 객석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퇴장했다고 한다. 예상했던 기립박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이 땅에 기립박수 문화가 뿌리내리기 전이었다. 하지만 20년 뒤 한국 관객은 '기립박수 인플레이션'이라 할 만큼 쉽게 일어서고 쉽게 박수치고 있다.
뮤지컬에서 기립박수가 후해진 까닭은 배우들의 팬클럽 때문이다. 3년 전만 해도 뮤지컬 동호회가 주도하던 '단관'(단체관람)도 이젠 배우 팬클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조승우·오만석·류정한·김다현 등 특정 배우의 팬클럽 중엔 회원 1만 명이 넘고 한 공연에 10회 가까이 단관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흥행을 쥐락펴락할 덩치다. 그들은 공연의 질엔 아랑곳 않고 기립박수를 처댄다. 이른바 ‘묻지마 기립박수’다.
공연 제작사·홍보사들은 이런 풍조를 이용한다. 커튼 콜 때 흥겨운 노래를 삽입(외국엔 거의 없다)해 기립과 박수를 유도하고, 객석 앞자리에 바람잡이용 관객을 심어놓기도 한다. 물론 지난달 막을 내린 ‘올슉업’, 올 초 공연된 ‘로미오 앤 줄리엣’ ‘맘마미아!’처럼 정상적인 기립박수도 있다.
하지만 ‘클로저 댄 에버’ 같은 공연은 배우들이 직접 “일어나세요!”를 외치며 콘서트장 같은 객석 풍경을 연출하려고 했다. 그런 기립박수를 홍보 수단으로 쓰는 공연들도 있다.
미국의 브로드웨이월드닷컴은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기립박수란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별뜻 없다’는 응답이 38%로 가장 많았고, ‘객석에 관광객이 많다는 뜻’(26%), ‘앞사람이 일어나 기립한 것’(18%)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진짜 감동 받았기 때문’이라는 관객은 18%에 불과했다.
한국의 기립박수 신뢰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기립박수는 ‘감동 받은 관객이 배우에게 몸으로 보내는 찬사’는 아니다. 그보다 다른 요인일 때가 더 많다. 뮤지컬 관객 유지인(여·33)씨는 “특정 배우만 나오면 열광하고 기립하는 팬들 때문에 공연 감상을 망칠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