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920년에 오키나와에 간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큰 의의가 있는 일이었다." 실로 일본 민속학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1875~1962)는 그렇게 회상한다. 기록에만 보일 뿐 일본 '본토'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된 어법과 신앙, 제사 방식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을 보고 야나기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오키나와에 가서 발견한 것은 오키나와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의 원형을 상징하는 가상의 실체, 즉 야마토(大和)였다고 이 책의 저자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74)는 말한다.
야나기다는 민속학 자료 중 '눈에 비치는 자료'는 '여행 다니는 사람의 학문[旅人學]'이며 '가장 미묘한 심의(心意) 감각에 호소해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같은 나라 사람[同國人]의 학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오직 일본인만이 일본이라는 '일국(一國)'의 민속학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내부자의 특권에 의해 이뤄지는 학문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야나기다는 민속학의 개별 성과들은 '일국민속학'으로 종합돼야 하며 그 학문은 "반드시 국민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전혀 탈(脫)정치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국 민속학의 연구란 곧 일본이라는 '근대 국민국가(nation state)'의 실체를 조작하기 위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현대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고야스의 이 책은 그가 1990년대 이후 썼던 논문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일견 엉성한 체제(3부의 1장과 2장은 많은 부분이 겹친다)에도 불구하고, '제국'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형성된 근대 '지식' 자체의 기원과 성격을 따지는 고고학적 탐구 방법을 통해 방대한 사상사적 맥락을 짚어 나간다. '국민국가'란 것이 근대 세계의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실체를 갖춘 주권국가로서의 공인을 받는 것이라면, 지식 역시 그것을 뒷받침해줘야 한다. 그래서 국가의 의식과 속성을 지닌 민속학·윤리학·국어학과 같은 국학(國學)으로서의 개별 분과학문이 생겨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일국적 지식'인데, '국어(國語)'와 '일본어(日本語)'라는 용어의 차이만 해도 간단치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1941년만 해도 "국어라는 것은 일본 제국의 중추를 이루는 야마토 민족 사이에서 발달해 대일본제국 국민의 통용어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후 '대동아 공영권' 안에서 다른 민족에게 보급하는 언어는 '일본어'이지 '국어'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일본 경제가 부흥한 1970년대 이후 '일본어'란 개념이 다시 '국어'를 압도하려는 현상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근대 인식은 '자기'를 넘어서 '타자(他者)'까지도 새롭게 보게 된다. 고야스는, 엄격한 문헌주의와 고증으로 이름 높은 교토대 지나학(支那學·'중국학'을 비하한 개념)조차 사실은 중국을 '외부에서 처방을 내려야 할 대상'으로 본 제국주의적 시선의 일부라고 폭로한다. 중국을 정체된 늙은 대국으로 여긴 나이토 고난(內藤湖南)이나 '논어' 텍스트를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본 쓰다 소기치(津田左右吉)의 시각이 여기에 속한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이제 '탈근대'가 화두로 떠올랐다. 1942년의 악명 높은 '근대의 초극(超克)' 좌담회에서 지식인들은 이제 아시아의 대표주자 일본이 유럽이 만들어 놓은 '근대'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사를 실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떠들어댔다. 고야스는 그들 중 아무도 일본 스스로 처해 있던 '근대'의 낡은 요소들을 극복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꾸짖으면서, 이 담론에 대립한 일본 사상계의 거장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조차 일본의 미성숙한 병리(病理)를 비판했을 뿐 총력전을 수행하게 한 일본 근대의 실체를 분석하지는 못했다고 비판한다. 전후(戰後)에도 끊임없이 교과서 문제를 일으키며 역사의 '다시 말하기'와 '고쳐 말하기'를 시도하고, 히로시마 기념관에서 부정적인 유산으로서의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상화하는 것은 진정한 반성도 극복도 없는 역사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이 주는 놀라움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기저에서 작동됐던 사상적 메카니즘의 실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일본'을 '한국'으로 바꿨을 때 느껴지는 기시감에 있다. 일본(한국)의 원형을 찾아내는 민속학, 일본 일국학(한국학)과 국민국가의 수립, '국어'와 '일본어'(한국어)의 꺼림칙한 공존 같은 것들은 여태껏 익숙했던 것들의 기원에 대해 다시금 성찰해 볼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지나학'의 주요 인물 쓰다 소기치가 바로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불신하기 시작했던 그 인물이라는 사실도 곱씹어볼 만하다. 원제 '日本近代思想批判: 一國知の成立'(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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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교육과정에서 한 번도 배운 적은 없지만 사실 20세기 우리의 지식체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분야가 일본 근·현대 사상이다. 국내에 출간된 개론서로는 '근대 일본 사상사'(소명출판)를 들 수 있다.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치쿠마서방(筑摩書房)에서 출판된 '근대일본사상강좌' 시리즈 중 제1권 '역사적 개관'에 해당하는 책으로 전후(戰後) 일본사상계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집필을 맡았다. 메이지 유신 이래 자유민권운동과 무정부주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에서 파시즘까지 복잡다단한 사상의 전개를 폭넓게 서술했다.
'일본근대철학사'(생각의나무)는 미야카와 토루, 아라카와 이쿠오 등의 전문 학자 6명이 시대별로 나눠 집필한 책으로 일본이 유럽 철학 사조를 어떻게 수용했는지 분석한 세계사적 안목이 돋보인다. 좀더 일목요연하게 개괄한 책으로는 가노 마사나오의 '근대 일본사상 길잡이'(소화)가 있다.
이 밖에 민중사상사 연구의 권위자인 야스마루 요시오가 쓴 '현대일본사상론―역사의식과 이데올로기'(논형)는 전후의 일본 사상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전체주의와 내셔널리즘의 대두를 우려한 책이다. '태평양전쟁의 사상'(이매진)은 1942년 일본 지식인들의 좌담회 '근대의 초극'과 '세계사적 입장과 일본' 등을 번역한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이 히로마쓰 와타루의 '근대초극론'(민음사)이다. 스테판 다나카의 '일본 동양학의 구조'(문학과지성사)는 겉으로 실증성을 강조했던 일본 동양학이 실제로는 일본의 아시아 지배를 뒷받침했다고 분석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