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검었던 어릴 적 내 살색, 사람들은 손가락질해 내 마미(Mommy)한테~하루에 수십 번도 난 내 얼굴을 씻어내, 하얀 비누를 내 눈물에 녹여내 까만 피부를 난 속으로 원망해”(‘검은 행복’)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가수 윤미래(26). 4년여 만의 새 앨범 ‘t3, YOON MIRAE’는 자신의 핏줄과 험난한 인생에 대한 고백이다. ‘검은 행복’에는 고단한 아픔이 집약돼 있다.
“그동안 노래만 불렀지 제 얘기를 직접 털어놓은 적이 없었죠. 그래서 저 미래는 이런 사람이라고 팬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미군 하사관으로 근무하며 부대 내 ‘스타 DJ’로 이름을 떨쳤던 윤미래의 아버지 토머스 제이 리드(51)씨도 영어 내레이션으로 참여했다. 윤미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빠의 음악에 파묻혀 산 셈이다. LP 3만장을 갖고 매일 친구들을 불러 파티하며 어린 나를 리듬에 눈뜨게 해줬던 아빠는 영원한 음악적 스승”이라 했다.
새 앨범은 그의 장기를 화사하게 펼쳐 놓는다. 힙합, 솔, R&B 등 흑인음악의 다양한 장르를 정직하게 끌어안는다. 타이틀곡 '잊었니'는 울부짖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떨림이 담긴 묵중한 창법을 대중적인 멜로디에 담아낸 곡. 단순한 선율을 따라가는 '시간은 눈물과 흐르고'는 음성의 매력만으로 승부를 건다. 그러나 이 앨범의 가치를 한층 높여주는 건, '블랙 다이아몬드' '페이 데이' 등에서 쏟아지는 통쾌한 래핑(rapping)이다. 윤미래의 솔직한 고백. "무대에서는 사람들과 놀 수 있는 랩이 최고예요. 퍼포먼스도 재미있고 에너지도 느껴지잖아요. 노래는 좀 심심하죠." 노래도 일품이지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 여성 래퍼.
소속사 문제 등으로 4년여 공백을 가졌던 그는 "15세에 데뷔해 중퇴했던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며 "너무 힘들어 음악을 그만두고 심지어 부동산 소개업을 해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음악 없이 살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혼혈인 그에게 고통은 익숙했다.
"어려서 한국에 왔을 때 친구도 없고 한국말도 못해서 오락실에서 살았어요. 주인 할머니가 제일 친한 친구였죠. 제가 영어 한마디만 하면, 애들은 '깜둥이' '양키 고 홈'이라고 소리치며 '비행기표 사줄 테니까 네 나라 가서 살아라'라고 했죠. 외국인 학교를 다녔지만 흑인 계열 학생은 저를 포함해 2명밖에 없어 차별받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는 "미국인, 한국인, 흑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저는 누구랑 어울려야 하는 건지 늘 혼란스러웠다"며 "그런데 신기한 건, 제가 데뷔하고 난 뒤에는 사람들이 저를 그냥 '연예인'으로만 봐줬다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지금은 행복하죠."
그는 데뷔 초 자신의 아버지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기획사에서는 이렇게 달랬다. "네가 '반(半) 흑인'이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너를 나쁘게 볼 거야. 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반(半) 흑인'이라고 이야기해." 그는 "데뷔할 때, 나이도 높여서 말했기 때문에 한 4년 동안 열아홉 살로 살았다"며 웃었다.
"작년에 풋볼 스타 하인즈 워드 때문에 한국 내 혼혈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잖아요. 솔직히 그때 무척 화가 났어요. 아니 하인즈 워드가 성공하기 전에는 한국에 혼혈인이 없었나요? 그리고 또 지금은 어때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해졌잖아요." 그는 어떤 방식으로 혼혈 아동을 도울지도 고민 중이다.
윤미래는 늘 성공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운 음악인을 꿈꾸지만 쉽지가 않다.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 "좋아하고 사랑해서 시작한 음악이지만 좀 나이가 들면서 먹고살기 위한 음악도 하게 되더군요. 엄마에게 집을 사주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 해주고 싶어서 음악을 직업으로 삼게 된 거죠. 10년쯤 지나서는 대중의 반응에 상관없이 나를 위한 음악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 4년여만에 돌아온 혼혈 여가수 윤미래가 달라진 모습으로 '잊었니' 뮤직비디오에 등장한다. /조선일보 최승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