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수도권 신도시 초·중·고교생들 사이에서 집중력을 강화하는 알약 복용이 확산되고 있다. 이 알약은 주의가 산만하고 과잉 행동을 보이는 증세에 처방하는 치료약이지만, ‘공부할 때 집중력을 향상시켜주는 묘약’으로 잘못 소문나면서, 증세가 심하지 않은 학생들이 복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알약은 병적 증세가 확실한 환자에겐 부작용이 거의 없지만, 정상인이 자주 복용할 경우 식욕부진, 우울증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현재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 이 알약을 처방하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원 등 병·의원이 20여곳에 달하며, 대개 '○○학습 클리닉'이란 간판을 달고 있다. 이런 의원은 서울 일부 강북지역과 수도권 신도시에도 생겨나고 있다.

◆알약 찾는 학생들로 붐비는 학습 클리닉

서울 A외고 2학년 이모(여·17)양은 중학교 때 전교 2~3등을 했다. 하지만 고교 성적이 반에서 20등까지 내려가자 작년 초 서울 강남의 학습 클리닉을 찾았다. 6개월간 심리치료를 받았고, 집중력을 강화시켜 준다는 알약 2~3개를 거의 매일 1년째 복용하고 있다.

이양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뇌호흡' '투시' '속독' 등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방법은 안 써본 게 없다"며 "약물 치료가 효과가 있을까 해서 계속 약을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서울 대치동의 한 학습 클리닉엔 인근 학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과 학부모 10여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학생과 함께 온 한 어머니는 "아이가 산만하고 공부를 못하는데,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여기에 왔다"고 했다. 초등학생을 데리고 온 다른 어머니는 "형은 얌전한데 아이가 지나치게 활동적이고 산만해 앞으로 공부하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해서 (병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이 병원엔 등록된 학생 수만 350여명이고, 하루에 10여건의 문의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다른 학습 클리닉 직원은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날은 약이 품절되는 경우도 있다"며 "치료를 위해 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성적을 올리려는 목적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서울 강남지역에 있는 학습클리닉(소아청소년정신과 의원)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치료와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부작용 조심해야

이 알약은 병원에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이다. '메칠페니데이트'라는 성분으로, '콘서타(concerta)' '메타데이트(metadate)' '페니드(penid)' 등의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ADHD는 학습과 자기통제를 관장하는 대뇌에서 신경전달물질 도파민(dopamine)의 분비에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질환으로, 주의가 산만하고 참을성이 부족하며 준비물을 잘 잊어버리는 증상을 보인다.

대부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수입약이지만 식욕부진, 수면장애, 구역질, 불면, 불안, 환각, 어지럼증, 우울증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황준원 서울대 의대 교수(소아청소년정신과)는 "최근 미국에서도 통상적인 ADHD 환자의 세 배에 이르는 아동이 약을 복용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ADHD를 생리적으로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고, 주의력 정도에 따라 의사가 자의적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얼마 전 공부를 잘못하는 한 아이가 병원에서 간단한 진단만 받고 ADHD 처방약을 받아오기에 '그냥 버리라'고 권유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학습 클리닉 원장은 이에 대해 "일부 클리닉들이 무리하게 약을 처방하는 사례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 문장완성검사, 어머니·본인 상담, 집중력테스트, 지능검사, 정서검사, 인성 검사 등 2시간30분에 이르는 정밀 검사를 거쳐 ADHD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