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키와 새처럼 길고 가는 다리. 세계를 지배하는 케냐 육상의 힘이 여기에서 나온다. 고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해온 칼렌진 종족의 공통된 신체 특징이다. [엘도렛(케냐)=채승우기자]

“케냐가 20년 이상 남자 중장거리 종목을 지배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킵초게 케이노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이사야 F 키플라가트 케냐육상연맹 회장, 남자 마라톤 세계 기록 보유자 폴 테르가트 등 케냐의 수많은 육상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밝힌 이유는 비슷했다.

우선 해발 1800~2400m에서 이뤄지는 고지대 생활이다.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에서 생활하면 인체는 적혈구를 늘리고 유산소운동 능력을 향상시켜 스스로 환경에 적응한다. 이 때문에 중장거리 육상 선수들은 심폐기능 향상을 위해 고지대 훈련을 많이 실시한다. 어릴 때부터 맨발로 먼 거리를 뛰어다녀온 생활방식도 중요한 요인이다. 케냐 청소년들은 집에서 2~5㎞ 떨어진 학교로 가기 위해 산을 넘고 야산을 달린다. 자연스럽게 중장거리 훈련이 생활화되는 것이다.

육상 캠프의 저녁 식사. 우갈리(옥수수 가루로 만든 떡)와 감자, 양배추·당근 익힌 게 전부다.

가난에서 탈출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케냐에서는 성공한 육상 선수가 정치인 다음으로 대접받는다. 친척과 이웃집 아저씨, 형이 상금을 받아 집과 농장을 사는 것을 보며 케냐 어린이들은 육상 선수의 꿈을 키운다. 유전적 요인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도 있다. 1999년부터 케냐의 엘도렛에 살면서 케냐 육상을 연구하고 있는 ‘스위스 러닝(Swiss Running)’지 발행인 쥐르그 비르츠(스위스)씨는 케냐인의 신체구조와 식생활에 주목하고 있다.

케냐 육상 스타의 75%는 40개 종족 중 부족 규모 5위인 칼렌진(12%)에서 배출된다. 케이노 IOC 위원과 폴 테르가트도 마찬가지다. 해발 2000m 고원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해온 그들은 작은 키에 다리는 길고, 종아리가 가늘다. 비르츠씨는 ‘하체 근육량이 유럽 선수보다 12% 적기 때문에 케냐 선수들의 에너지(산소) 소비가 8% 절약된다’는 덴마크 한 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인용, “똑같은 거리를 다른 선수보다 적은 에너지로 달릴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피로를 덜 느끼면서 스피드를 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케냐 선수들은 하루 열량의 76.5%를 탄수화물로 채운다. 미국, 유럽 선수(49~50%)에 비해 매우 높은 비율이다. 우갈리(옥수수가루를 반죽해 찐 것), 감자, 양배추, 콩 등 야채를 주로 먹고 우유·설탕을 듬뿍 넣은 차를 물보다 많이 마신다. 비르츠는 “중장거리 선수들의 에너지가 되는 글리코겐을 근육에 늘 최대한 저장할 수 있게 해주는 식생활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케냐 육상이 강한 이유를 밝히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딱 부러지는 결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위에서 거론된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은 가능하다. 그런 가운데 케이노 IOC 위원의 말이 관심을 끈다. “인간은 똑같다. 신체구조, 사회·문화적 요소는 과학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다. 나는 정신력이 실력의 75%를 차지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