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은 아직 '요정'이었다. 남나리(21·미국명 나오미 나리 남)는 카메라 앞에서 "어떤 포즈가 좋을까요"라고 묻더니 특유의 미소와 함께 우아한 몸짓을 취했다. 1999년 전미 피겨스케이팅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2위를 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당시 열네 살 소녀는 은반 위에서 관객과 교감하는 재능이 탁월했다. '제2의 미셸 콴', '베이비 발레리나'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한국에서도 커다란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부상과 재활, 수술이라는 불운이 발목을 잡았다. LG전자와 5년간 100만 달러가 넘는 후원 계약을 맺었다가 "아무 성과 없이 돈만 계속 받을 순 없다"며 3년 만에 스스로 후원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져 갈 즈음, 남나리는 극적으로 재기했다. 싱글이 아닌 페어 부문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 레프테리스(24)와 호흡을 맞춘 지 9개월 만인 지난 1월 전미선수권에서 5위를 한 것이다.
새로운 선수로 돌아온 남나리가 7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현대카드 수퍼 매치 2006'(16~17일·서울 목동 링크)에서 세계적인 피겨 스타들과 함께 한국 팬들에게 인사하기 위해서다. 입국 이튿날인 12일 신라 호텔에서 남나리를 만났다. 스물한 살, 성숙한 여성의 느낌이 묻어났다. 어머니, 레프테리스와 명동에서 쇼핑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영어가 편한 눈치였다. 어머니 최은희씨는 "나리가 나이 들고 나선 우리말 하다 실수할까봐 더 신경을 쓴다"고 했다.
2001년 2월 엉덩이 관절 탈구, 연골 파열 증세로 수술을 한 뒤 부진을 거듭, 사실상 스케이트를 벗었다가 컴백하게 된 과정이 무엇보다 궁금했다. "처음엔 좌절했죠.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 나가고 싶었으니까요. 다시는 스케이트 못 탈 줄 알았어요."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 LA 근교 어바인 집 근처 커피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생활은 금세 지루해졌다. 선수 시절이 그리워졌다. 파트 타임 클럽 코치로 어린이들을 가르치던 남나리는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자 페어에 도전해 보기로 맘먹었다.
"어렸을 때부터 페어가 재미있어 보였어요. 싱글을 그만두고 나면 해보고 싶었죠." 자신을 오래 가르쳤던 존 닉스 코치가 "재능이 너무 아깝다"며 싱글을 다시 시작하라고 권유했지만 피겨에 대한 열정을 일깨울 변화가 필요했다. 작년 4월 만난 그리스계 남자 선수 레프테리스와는 금세 단짝이 됐다. 서로 팔찌도 같은 것을 차고 있을 정도로 친한 사이. "저에겐 행운이죠. 똑같은 목표와 열정을 가지고 매일 열심히 훈련하는 테미를 만난 게 말이죠. 책으로 치면 같은 페이지를 보고 있다고나 할까요." 레프테리스가 남자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훈련과 인간관계에 대한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레프테리스가 보는 남나리는?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여성'이다.
남나리는 현재 미셸 콴 부녀가 소유하고 있는 이스트웨스트 아이스 팰리스(아티지아 시)에서 매일 3~4시간씩 연습한다. 그동안 다니던 지역 칼리지 공부도 중단했다. 용돈을 벌기 위해 어린이 10여 명을 가르치는 일 외엔 스케이팅에만 열중한다. 넉 달 전부터는 링크에서 가까운 애너하임에 집을 구해 룸메이트와 생활하고 있는 중. 어머니 최씨는 "처음엔 반대했는데 교통 체증 덜한 곳에서 운동 다니라고 허락했다. 집엔 주말마다 빨랫감을 들고 찾아온다"며 웃었다.
남나리와 레프테리스는 이번 시즌을 대비한 프로그램을 막 완성해 놓은 상태. "기술적으로 더 나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준비하는 단계로 생각하고 있어요. 목표는 물론 2010년 동계올림픽 출전이죠." 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아 온 꿈이다. 달라진 소망도 있다. "어렸을 땐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은퇴하고 나면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어요."
입력 2006.09.1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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