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월드비젼 긴급구호팀장

"잘랄라아아!"(지진이다)

신새벽, 어린아이의 외마디 비명이 산골짜기를 진동한다.

"당장 여권을 주머니 속에 챙겨 넣으세요." 같이 자던 의료진에게 소리친 후 총알처럼 밖으로 튀어나왔다. 와르르르. 눈앞에서 앞산 경사면이 무너져 내린다. 일행 중 한 명이 무서움을 참지 못해 눈물을 보였다. 나는 태연한 척 농담을 했다. "여러분은 지금 지진 현장을 생방송으로 보고 계십니다."

사실은 나도 두렵다. 나야 긴급구호팀장이니 재난 현장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의료진에게는 절대로 아무 일 없어야 한다. 아까 여권 챙기라는 말은 철수 대비를 하라는 게 아니라, 최악의 경우, 죽은 이의 신원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 여권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성호가 그어진다. "하느님, 제발 이대로 잦아들게 해주세요."

그 순간 또 크게 흔들. 마치 놀이기구에 방금 시동이 걸린 것 같다. 이곳 해발 2000미터 산골 마을 나자와바드에 온 지도 벌써 5일째다.

지난 10월 8일, 파키스탄과 인도에 강진(强震)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직후, 월드비전 한국 사무실은 즉각 비상회의를 열어, 1차 지원금으로 1억원을 책정하고 72시간 내에 의료진을 급파하기로 했다. 동행 의료진은 안양 샘병원 의사 3명과 간호사 2명이었다.

불행 중 다행은 이번 지진 피해지역 중 한 곳을 작년부터 월드비전 한국이 의료지원하고 있는 덕분에 이런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했다는 거다. 이렇듯 언제나 불시에 발생하는 초대형 재난에 효과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가든 NGO든 사전에 구호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 것이 관건 중의 관건이다. 현장 직원들과 장시간 회의 끝에 의료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산악지방으로 가기로 하고 다음 날 새벽, 길을 떠났다.

늦은 오후, 도착하자마자 천막을 치고 진료소를 차렸다. 순식간에 환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두개골이 갈라진 아이, 갈비뼈가 으스러진 여인, 다리 상처에 뼈와 힘줄이 다 드러난 노인…. 다음 날부터 길이 되는 대로 더 깊숙이 들어가며 진료를 했다. 간신히 뚫어 놓은 길이 밤새 무너져 산 넘고 물 건너 걸어간 적도 있다. 군인 20명이 약품과 천막을 지고 통신병과 공병들까지 앞세운 행군이었다. 이렇게 산속과 만세라 근처에서 열흘간 돌본 환자가 무려 1550명이 넘는다.

나는 틈틈이 주민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95%가 무너진 산골에서는 대부분 허름한 움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나무와 천으로 대충 만든 움막에 들어가 보니 바닥에 얇은 비닐이 깔려 있었다. 세상에! 군인 막사에서 두꺼운 군용 담요를 깔고 자는 우리도 땅에서 올라오는 냉기 때문에 못 견디게 추운데, 애들이 이렇게 지내다간 폐렴과 저(低)체온증으로 살아남지 못할 거다.

"또 지진이 오나요?" 종일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꼬마들이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 "당연히 안 오지. 그렇다면 내가 여기 왔겠어?" 나의 이런 거짓말에도 안도의 빛이 도는 아이들 얼굴 보기가, 마음 아프다. 아, 이 꼬마들! 열 살 남짓한 이 어린아이들이 무슨 수로 혹독한 겨울을 견뎌낼 것인가? 살아남은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깝게도 한국에 돌아오니 파키스탄 지진은 벌써 옛날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긴급구호는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재난 당시보다 그 이후가 훨씬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살릴 수 있는 사람도, 살려 놓은 사람도, 다 잃게 된다. 우선 300만 이재민들은 닥쳐오는 겨울을 나야 한다. 그러려면 당장 식량과 텐트와 담요가 필요하다. 지금 그곳에선 담요 한 장 때문에 사람이 죽고 산다. 그 목숨 같은 담요 한 장 값이 우리 돈 3000원이다.

(한비야 ·월드비젼 긴급구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