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북해 유전의 생산량 감소가 고유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로 인해 노르웨이와 함께 서유럽의 양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인 영국도 내년에 원유 순(純)수입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점점 쇠퇴하는 북해 유전=세계 8위의 원유 수출국인 영국은 올 1~5월 산유량이 하루 183만배럴로, 지난해보다 9.5% 감소했다. 원유 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1999년에 비하면 40% 가량 줄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원유 수출국인 노르웨이도 올 1~5월에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7.5% 감소했다.
북해 유전은 영국과 노르웨이 사이의 북해에서 개발된 유전군을 말한다. 1969년에 거대한 에코피스크 유전이 개발된 것을 시작으로 70년대 이후 차례로 개발됐다.
북해 유전은 특히 70년대 오일 쇼크를 거친 이후 80~90년대 저유가 구조 정착에 기여했다. 영국과 노르웨이 같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비회원국들의 원유 생산이 대폭 늘어나면서 전 세계 원유시장 공급량이 증가해 저유가 체제가 지속된 것. 그 덕에 영국도 1980년부터 원유 수입량보다 수출량이 더 많은 순수출국 상태를 유지해왔다. 1999년에는 영국과 노르웨이의 일일 산유량이 하루 600만배럴을 넘어, 전 세계 원유생산량의 8%를 차지했다.
◆다시 커지는 중동 석유의 힘=저유가의 일등 공신이었던 북해 유전의 생산량이 1999년을 분기점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북해 유전의 생산량 감소는 일시적인 게 아니다. 북해에서 개발된 대형 유전의 매장량이 줄어 원유를 퍼올리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 석유의 가채(可採) 연수는 중동(88.1년)이나 중남미(41.5년)를 제외하고는 아프리카(19.1년), 유럽(17.1년), 아시아(16.6년), 북미(12.2년) 등 대부분 지역이 20년을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통상산업부와 석유회사들은 앞으로 5년 후 영국의 산유량이 하루 120만배럴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북해, 미 텍사스 등과 같이 경유를 생산하는 유전들은 이미 생산량이 절정에 달해 추가 생산 여력이 별로 없는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영국도 내년에는 원유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순수입국으로 바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북해 유전의 쇠퇴는 곧 세계 원유시장이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점을 의미한다. 중동 국가들의 원유수출 점유율은 1985년 27.9%까지 떨어졌다가 2002년에 33.9%까지 늘어났다.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지면, 불안한 중동 정세에 장단 맞춰 유가가 고공 행진을 거듭하는 현재의 고유가 위기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파리=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