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표정은 한 가지가 아니다. 저물면서, 어둠은 사물들에게 새로운 윤곽을 부여하고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다. 저물어 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문득 어둠의 신비한 작용을 볼 수 있다. 더구나 당신을 바래다주고 오는 밤, 어둠에 서서히 묻혀가는 것들을 보게 된다면, 그때 어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류인서 시인의 첫 번째 시집에서 어둠의 작용은 이중적이다. 우선 어둠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서로의 그림자에 물들어가는 일"이다. 아니,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두워지면서 사물들은 서로에게 스며든다. 그런데 "너를 바래다주고 오는 먼 밤" 어둠은 다른

이광호 문학평론가·서울예대 교수

방식으로 움직이다. 사물들은 다만 "제 몫의 어둠을 족쇄처럼 차고 앉아" 있다. 밤의 시간 속에서 사물들은 한 결로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의 어둠 속에 딱딱하게 갇혀 버린다.

그것은 너를 바래다주고 오는 먼 밤의 나의 내면의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당신을 바래다 준 나는, 어둠 속에서 너의 캄캄한 절벽을 느낀 것인지 모른다. 각기 제 어둠의 단애를 빠져 나오지 못하는 너와 나를 발견했던가. 아니면, 그 속에서 "한 어둠을 손 잡아주는 다른 어두움의 손"을 더욱 간절하게 바란 것일까?

(이광호·문학평론가·서울예대교수)